일의 소중함, 그리고 선악과(창세기 2:15~17)

일의 소중함, 그리고 선악과(창세기 2:15~17)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3

강성열 교수
2021년 08월 24일(화) 13:42
처음 인간에게 비옥한 땅 에덴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그가 아무 할 일도 없이 무위도식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선물로 주어진 땅을 "경작하며 지키는" 일이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이 처음부터 일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노동)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이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는 한없이 즐거운 것이다(사 65:21~23). 그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본질에 적합한 것이요, 따라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일에는 어떠한 제약도, 강제도 따르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 낙원에서의 노동인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낙원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면서 놀기만 하는 유흥장이 아니라 함께 가꾸며 지키며 관리해야 할 삶의 일터임이 분명해진다.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노동이 부정적이고 피동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은 인간의 범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잘못을 범한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한 노동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이제 인간은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땀을 흘리고 수고를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가꾸고 지켜야 할 신성한 노동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세속적인 투쟁으로 바뀌어버린 셈이다(3:17~19).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되찾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일(노동)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거룩한 과업임을 알고 항상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일에 종사해야 한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의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말이다(마 6:33~34).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소중히 여겨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노동이 소중함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하는 일과 똑같이 다른 사람들의 노동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신성한 것(선물)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노동은 비천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호도하여 노동의 신성함을 저버리도록 요구하는 잘못된 생각도 고쳐져야 마땅하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8계명은 사실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매우 중요한 계명이다. 이 계명은 자기 손으로 땀 흘려 수고한 것으로 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일함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 자요,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자임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땀 흘림이 없는 인간 실존은 참으로 무의미한 것이다(살후 3:10).

하나님은 처음 인간에게 에덴을 선물로 주시고 그에게 그 동산의 땅을 일구고 지키는 일을 맡기신 다음에 그에게 먹을 양식을 주셨다. 그는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창 1:29~30 참조). 그러나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도대체 무슨 나무일까를 아는 데에 있지 않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아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금지 명령의 형태를 가지고서 나타난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그에게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창 1:26~28).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무제한의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 사람은 비록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 왕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기에 도무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맞먹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먹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무제한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이 넘어가서는 안 될 한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안 된다고 명령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즉,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 이것이야말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바람직한 관계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국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명령하는 분이시요, 피조물인 사람은 그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임을 뜻한다.

선악과 열매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진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죽음인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스스로가 주인 노릇을 하려는 자에게 주어질 형벌은 본래 그에게 선물로 주었던 생명을 다시 회수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신 직후에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를 주셨다(17절).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그처럼 본질적인 죽음의 형벌로부터 벗어나긴 했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삶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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