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 누운 엘리야(왕상 19:1~8)

로뎀나무 아래 누운 엘리야(왕상 19:1~8)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8

강성열 교수
2021년 09월 29일(수) 09:21
본문의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철권통치 상황 속에서 활동한 예언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야웨 신앙이 바알 종교에 의해 압살당하던 때였다. 따라서 그의 예언 활동은 당연히 바알 종교에 맞서 야웨 신앙을 되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첫 번째 예언 메시지가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준다. 그는 비(또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 바알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임을 선언하였고(왕상 17:1), 갈멜 산 대결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야웨야말로 유일한 참 신임을 입증하였다(왕상 18:1, 30~46). 야웨 신앙의 승리는 자연스럽게 가뭄의 해제와 풍성한 비의 허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갈멜 산에서의 승리는 곧바로 바알 종교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 바알 종교에 근거한 아합과 이세벨의 철권통치는 여전히 계속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머잖아 야웨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정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라는 엘리야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난다. 오늘의 본문은 이처럼 승리를 거둔 후에 생겨난 상황의 반전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한 17~18장의 엘리야 대신에 절망과 좌절에 빠진 엘리야를 만나게 된다.

1~2절: 갈멜 산 대결의 결과를 목격한 아합은 경건치 못한 아내의 광란을 침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바알을 버리고 오직 야웨만을 섬길 것을 촉구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는 바알 선지자들이 패한 일과 엘리야가 기손 시내에서 그들을 칼로 죽였음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보고했다. 그는 아내의 지배를 받았고, 바알 종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것은 아합의 통치가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나중에 야웨 신앙에 충실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은 자도 이세벨이 아니던가(왕상 21:7~16).

아합의 보고를 듣고서 격분한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자(히브리어 '말르아크')를 보내어 맹세코 24시간 안에 그의 생명(히브리어 '네페쉬')을 취하겠다고 위협한다. 신들(gods)의 권위를 빙자한 이세벨의 맹세는 엘리야를 추방함으로써 그의 사역을 중단시키려는 경고의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를 죽이겠다고 작정했다면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라 왕궁에 속한 병사들이나 자객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세벨은 갈멜 산 승리를 직접 목격한 백성들의 여론을 쉽게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3~4절: 갈멜 산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의 살해 위협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약 5:17). 마침내 그는 자기 생명('네페쉬')을 구하기 위해 순례 여행지로 유명한 남왕국 유다의 브엘세바(암 5:5; 8:14; 참조, 창 21:33)로 피신한다. 브엘세바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둔 채 홀로 광야로 들어간 그는 절망에 빠진다. 야웨 하나님이야말로 비와 풍요를 주시는 유일한 참 신임을 아합 왕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호전되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되어 이제는 자기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망의 구렁에 빠진 그는 심신의 피곤함을 견디지 못한 채 광야에 있는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자 한다. 여기서 로뎀나무는 우기(雨期)에만 물이 흐르는 와디(건천) 바닥을 따라 생장하는 나무를 일컫는 것으로, 밤에는 바람을 막아 주며 낮에는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에 야영지로서 적합했다. 로뎀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죽기를 간청한다. 이세벨이 구하던 생명('네페쉬'),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구하고자 했던 생명('네페쉬')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가져가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그 근거로 엘리야는 자신의 사역이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들에 비교가 되지 않음을 밝힌다. 엘리야가 조상들과의 비교에서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그가 갈멜산 대결 이후 상당한 자신감에 차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조상들보다 못하고 따라서 더 살 필요가 없다고 보아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가져가 달라고 호소한다.

5~6절: 죽기를 각오한 엘리야는 굶주림과 피곤에 지친 몸으로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죽음의 사자('말르아크'; 2절)에게 쫓기는 엘리야에게 생명을 주는 사자(=천사, '말르아크')를 보내신다. 천사는 잠에 빠진 엘리야를 깨우고서 숯불로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떡과 한 병의 물을 그에게 공급한다. 엘리야는 가뭄이 들던 때에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받은 적이 있었으며(왕상 17:3~7), 그 후에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양식을 공급받은 적이 있었다(왕상 17:8~16). 따라서 본문에서 주어지는 천사의 도움은 엘리야에게 세 번째의 것에 해당하는 셈이다.

7~8절: 천사가 준 떡과 물을 먹고 다시 잠이 든 엘리야는 두 번째로 천사를 통해 양식을 공급받는다. 이때 천사가 한 말("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은 엘리야가 어디론가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는 천사가 제공한 음식을 먹고서 힘을 얻은 후에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한다. 시내 산으로도 불리는 호렙 산은 한때 모세가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곳이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호렙 산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모세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호렙 산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의인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는다. 이로써 엘리야의 절망은 완전히 극복되고 다시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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