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빛의 선교와 그 신학적 원리(마 5:13~16)

소금과 빛의 선교와 그 신학적 원리(마 5:13~16)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산상보훈의 보화를 찾아서2

차정식 교수
2021년 12월 15일(수) 06:51
예수의 제자 그룹이 선교공동체임을 선포한 이 단락은 직전의 팔복 문단과 여러 모로 연계되어 있다. 먼저 3인칭 복수로 불특정 대상을 가리키던 '그들'이 11절부터 '너희'라는 2인칭 복수로 전환된 연계선상에서 이 구절 또한 제자들을 특정하는 '너희'로 선교의 주체를 설정한다. 11~12절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제자들에게 하늘의 큰 상이 보상으로 제시된 맥락에서 그 공간적 배경으로 '하늘'을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 13절에서 그 배경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땅'의 '세상'으로 적시되어 나온다. 예수는 당신의 제자들을 이 말씀으로 파송하면서 선교적 주체로 나서주길 바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 선교의 대상은 보편적인 포용성을 보여주는 인간 세상 전체로 제시된다. 물론 이것은 궁극적인 선교의 목표였을 것이다. 산상수훈을 규범으로 삼은 선교지향적 제자공동체는 구체적인 복음전파 현장에서 매우 전략적으로 기동했음을 마태복음 전체의 편집 흐름 속에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예수와 제자들은 갈릴리 사역을 통해 이방인의 마을과 사마리아 지역처럼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이질적인 범주 대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대상으로 일단 그 과녁을 정했다(마 10:5~6). 그러나 제자공동체가 확장되어감에 따라 특히 예수의 부활 이후 시점에서는 이 땅의 모든 이방 족속을 향해 그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그들에게 가서 제자 삼고 말씀을 가르치라는 개방적인 선교명령을 시달받는다(마 28:18~20).

이 본문은 이러한 선교적 전개 과정에서 그 궁극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하나님나라 선교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다. 물론 이 단계에서 제자들은 아직 유대교의 토라를 규범으로 삼아 그 의미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 유대교 내의 아방가르드 집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투사한다. 그것이 먼저 '소금'이란 메타포를 통해 비유적으로 드러난다. 이 땅의 소금이라는 이 선교적 명령을 통해 암시되는 바는 제자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다들 견결한 제자도의 기상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의와 나라라는 기치 아래 바람직하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전제한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고대사회에서도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 뿐 아니라 각종 식자재의 부패를 방지하는 물질로 널리 유통되었다. 뿐만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는 화폐의 기능도 담당하였고 복음서(막 9:49~50)의 맥락에서는 화해의 상징적 의미를 머금고 있다. 이 본문에서 소금은 전위적인 제자도의 포괄적인 지향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소금이 짠맛으로 특징지어지고 그 짠맛을 잃은 소금은 소금의 정체성과 실효성이 사라져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다는 상식적 교훈으로 예수는 제자도의 위상과 본질이 실추될 경우 어떤 결과가 오는지 은근히 경고의 메시지까지 던진 것이다. 그 부정적인 결과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짓밟히는 철저한 폐기 상태로 드러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이나 위기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제자들은 어찌하든지 이 땅의 삶에 연루되고 개입하여 수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늘어지기보다 적극적으로 이 세상 속으로 나아갈 것을 예수는 종용한다. 그렇지 못하면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린 무덤덤한 상태(moranthe)로 흙이나 먼지와 다를 바 없어져 결국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게 당연한 결과다. 여기서 그 짠맛을 잃어버린 무덤덤한 상태는 또 다른 희랍어의 함의대로 '바보'(moros)처럼 취급받는 것이다. 제자의 정체성과 본질을 지킨다는 게 이처럼 중요하고, 그것을 상실할 경우 당면하게 될 결과가 이처럼 처참하다.

'세상의 빛'이라는 또 다른 은유는 당시 유대교의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는 통상적인 이미지였다(사 42:6).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먼저 부름받은 선민으로 이방족속들에게 빛을 발하며 나아가야 할 선교적인 사명을 표상하는 구호였다. 예수는 이 메타포를 제자들에게 적용하여 그들이 이 세상을 향하여 빛을 발하는 선교적 제자들로 우뚝 서기를 기대했다. 유대인들은 이 선교적 사명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실패한 감이 짙었고(롬 2:19), 사도 바울은 그 대안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별처럼 빛을 발하는 계몽의 역군, 진리의 개척자들이 되길 기대했다(빌 2:15). 고대 근동과 주변의 도시국가에서 마을은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산 위에 요새를 둘러 건설하는 경향이 있었다. 집안에서도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둠으로써 집안사람을 두루 비추게 하듯, 산 위에 지어진 동네는 그곳에서 발하는 빛으로 인해 사방에서 훤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이 빛의 이미지로 암시되는 선교적 메시지는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수행해야 하는 종교적 감화와 문화적 계몽 전반을 아우른다. 그 선교의 내용은 단순히 문화적 우월성의 선전도 아니요 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단순화하는 이원론적 갈라치기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구원 복음이 구체적인 윤리적 삶의 실천과 그 행실의 열매로써 사람들을 감화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성취되는 포괄적이고 전위적인 복음의 지향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차정식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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