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하여(마 5:31~32)

이혼에 대하여(마 5:31~32)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산상수훈의 보화를 찾아서 6

차정식 교수
2022년 01월 11일(화) 14:44
이혼에 대한 가르침은 선행하는 간음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 세 번째의 반제를 구성한다. "또 일렀으되...하였거늘"이라는 문구를 통해 암시하듯, 이 역시 토라에서 전승된 매우 오래된 전통적 규율이 이혼의 기준으로 제시되며 많은 해석과 논란을 일으켰을 당시 유대교 사회의 정황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인용구는 출전에 해당되는 구절(신 24:1~4)의 정확한 인용도 아니고 핵심적인 요약도 아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는 구약성서의 전거는 이혼을 당연한 전제로 아내를 버리려 하는 남성 가부장의 결의를 암시한다. 이 요약문은 또 이혼을 합법적인 행위로 정당화하기 위해 써주는 '이혼 증서'에 대한 언급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그러나 신명기 24:1~4의 출전은 이혼 증서를 써주면서 굳이 이혼해야 하는 사유로 맞이한 아내와 관련하여 추후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조건이 명시된다. 이럴 경우 이혼 증서는 그 이혼의 정당성을 인준하는 기능을 한다. 나아가 그렇게 남편의 집에서 방출된 그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다시 또 그 남편이 그녀를 미워할 일이 생겼을 때도 이혼 증서를 써서 주어 내보낼 수 있었다. 그밖에 남편이 죽게 될 경우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이 경우에 다른 남자의 아내로 이미 몸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첫 남편은 그녀를 다시 아내로 맞이할 수 없고 맞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신명기 본문에서 묘사한 이혼과 이혼 증서를 둘러싼 정황이다.

이후 이 신명기 전통은 유대인 사회와 초기 예수공동체의 맥락에서 다양한 해석의 차이를 낳으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이혼 증서가 가부장 남편의 변덕과 기호에 따라 함부로 남발됨에 따라 오용될 수 있었고, 남편이 아내를 이혼하여 내쫓는 사유로 언급된 "수치 되는 일"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생겼다. 산상수훈의 본문에서는 유대교-초기 기독교의 가부장주의 전통을 반영하여 이혼의 주체를 무조건 남자로 한정하고 있지만, 마가복음 10:12는 로마의 전통을 반영하여 아내 쪽에서 이혼을 주도한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산상수훈에는 여성이 이혼을 주도하여 남편을 버릴 수 있는 이 로마 전통이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신명기 24:1~4의 이혼 증서와 관련된 전승은 유대교 사회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그 해석이 계승, 전파되었다. 한쪽은 이혼의 사유를 최대한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이혼을 제한하고 일부일처제의 결혼 관계를 장려하는 방향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 사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탄력적이고 관대하게 적용하는 방향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쿰란공동체의 에세네파 경우처럼 아예 결혼 자체를 장려하지 않고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혼에 대해 자유스러운 입장을 취하여 남성 가부장들이 이혼할 권리를 확장한 유대교 전통에서도 그 규정을 제한적으로 좁히느냐, 관대하게 넓히느냐에 따라 랍비 유대교 시대에 보수적인 샤마이 학파와 자유스러운 힐렐 학파의 입장이 갈린다. 가령 신명기 24:1의 "수치 되는 일"에 대한 해석도 샤마이 학파는 '간음'으로 한정하여 해석하였고, 힐렐 학파는 문자 그대로 다양한 계통의 '수치 되는 일'에 대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적용을 허용했다. 가령, 후자의 계통에서는 아내가 음식을 만들다가 태우는 사소한 일까지 그 범주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배경을 깔고 볼 때 예수께서 32절에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라고 언급한 것은 샤마이 전통의 보수적인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명기 본문에서 이혼 증서를 통해 금지한 것은 여성이 한 남편에서 다른 남편으로 남편을 바꾸었다가 다시 첫 남편에게로 돌아와 재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께서 반대한 강조점은 남편들이 자신의 주관적 변덕이나 까탈스러운 기호를 내세워 경솔하게 아내를 버리듯이 이혼을 하는 것이다. 1세기 가부장주의 사회에서 이혼으로 버림받은 여인이 사회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당당히 살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특별히 이혼위자료를 많이 받거나 자녀의 은택으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남자에게 몸을 의탁하거나 창녀로 몸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예수의 관점에서는 이런 이혼은 아내로 하여금 간음하게 만드는 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여자를 만나 결혼하는 남자 또한 간음에 해당되므로 예수께서는 '음행'이라는 성적인 부정함 이외에는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불가하고 부당하다는 기준을 제공한 것이다. 이는 샤마이 학파의 율법 해석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관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적인 동기와 배경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남성들이 자의적인 핑계를 만들어 아내를 버리는 방식으로 쉽게 이혼하는 속내를 꿰뚫어보면서 제자공동체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데 초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약자로서 여성들이 충분히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여성 인권의 측면에서 예수께서 보이신 약자보호의 배려를 여기서 짚어볼 수 있다.

차정식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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