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하시는 하나님(나훔 1:1~3)

보복하시는 하나님(나훔 1:1~3)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

윤동녕 교수
2022년 04월 14일(목) 10:04
나훔서는 3장으로 구성된 작은 예언서로서, 하박국 스바냐와 더불어 유다 말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나훔서는 니느웨의 구원을 선포하는 요나서와 짝을 이루는 예언서로서 니느웨의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고 있다. 예언자 나훔은 그 이름이 '위로받은 자'라는 뜻으로 오직 나훔서에만 등장한다. 때문에, 나훔 선지자의 출신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를 엘고스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엘고스 지역 출신이거나 엘고스 가문 출신일 것이다.

표제에 나타난 나훔 예언서의 성격(1:1)

나훔서는 니느웨를 향한 경고와 묵시를 묶어놓은 책(세페르 하존)이다. 개역개정은 '세페르 하존'을 "묵시의 글"로 번역하고 있지만 공동번역은 "니느웨가 받을 벌을 내다보고 적은 책", 새번역은 "니느웨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으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경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사'는 짐을 뜻하는데, 나훔의 예언이 니느웨에게는 큰 짐이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묵시로 번역된 '하존'은 '보다'를 의미하는 동사 '하자'의 명사형이다. 하존'은 예언의 시각적 성격을 암시한다. 나훔은 환상 가운데 이 예언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언의 매체가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예언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무리 화려한 환상을 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백일몽에 불과하다. 한편, 나훔 예언의 대상인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당시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니느웨는 폭력적인 도시로 유명했다. 때문에 니느웨는 유다의 적국으로서 뿐 아니라 하나님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할 수 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1:2~3)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자비하시고,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나훔서의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보복하시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다. '질투의 하나님'으로 번역된 '엘 카노'는 여호수아 25장 19절 외에 이곳에만 사용된다. 인간적 질투는 폭력으로 변화되기 쉽다. 왜냐하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질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질투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하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기본적으로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질투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당신 외에 다른 경쟁자를 두지 않으시겠다는 열심의 표현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불길 같은 질투는 그 사랑하는 자를 위협하는 자들에게 보복으로 표현된다. 2절에 세 번 반복되고 있는 '노켐'(개정-"보복하시는", 공동, 새-"원수를 갚으시는")은 '보복하다', '복수하다'를 뜻하는 동사 '나캄'의 분사형태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주 보복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신명기 32장 35절에 "그때에 내(하나님)가 보복하리라(나캄)"고 하였으며, 같은 장 41절에서는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나캄)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고 하였다.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보복의 날"(욤 나캄, 사 61:2)을 선포하며 고통당하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수단으로 보복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질투가 강렬한 만큼 그분의 보복도 철저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신해 니느웨에게 보복하신다. 이스라엘의 적은 바로 하나님의 적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독단적인 폭력이 아니라 반역하는 대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수의 하나님을 부르짖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보복과 복수는 하나님의 주요 역사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보복하시지 않으시면 힘없이 압제당하는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수의 하나님을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복수에 대한 기대는 사적이며 개인적인 보복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복수를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며, 힘이 있든 없든 간에 복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기다린다는 고백이다. 복수의 하나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불의에 대해 순응만 할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싸워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을 열정도 없이 값싼 사랑을 베푸는 분으로 오해하기 쉽다.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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