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까지리이까(하박국 1:1~11)

어느 때까지리이까(하박국 1:1~11)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6

윤동녕 교수
2022년 06월 01일(수) 09:49
어느 때까지리이까(하박국 1:1~11)



하박국서는 유다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선지자 하박국은 예레미야, 나훔, 스바냐와 동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하박국서는 크게 '하나님과 하박국과의 대화'(1~2장), '하박국의 기도시'(3장),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회중에게 일방적으로 선포된다. 하지만 하박국의 경우 대화의 형식을 통해 예언을 선포한다. 하박국은 질문하고 대답할 때 단순한 연설 형식 대신에, 드라마처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몸짓을 하며 음성의 고조와 색깔을 바꾸었을 것이다. 하박국 예언의 극적 효과는 3장의 예언적 기도시에서 더욱 효력을 발휘한다. 하박국은 마치 노래하듯이 시적 형태로 예언을 선포한다. 이처럼 하박국은 드라마와 노래 그리고 시라는 멀티 미디어적 소통 수단을 써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계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하박국서의 표제(1:1)

하박국서의 표제는 하박국 예언의 멀티 미디어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박국은 자신을 '선지자'로 소개하고 계시의 성격을 '묵시'와 '경고'로 규정하고 있다. 선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나비'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학계의 논란거리이지만, '부름을 받은 자' 혹은 '말하는 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하박국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예언자이다. '묵시'를 뜻하는 '하존'은 '보다', '마음에 그리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하자'에서 파생되었는데 예언자의 환상 체험을 강조한다. 묵시는 시각적 계시 수단이지만 청각적 계시를 포함한다. 2장 1절에서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고 말한 바와 같이, 하박국은 환상 가운데 보고 들은 것을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전하였다. 한편 '경고'는 히브리어 '마사'의 번역이다. '마사'는 예언의 한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로써 '들어 올린다'라는 동사 '나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며 '짐'으로 번역될 수 있다. 따라서 '마사'는 유다가 져야 할 짐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마사'는 적국을 향한 적대적인 예언을 가리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박국이 선포한 재앙 신탁(합 2:6~20)은 유다의 대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박국의 질문(1:2~4)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은 고통에 찬 현실을 하나님께서 왜 해결하지 않느냐는 불평으로 시작한다. "어느 때까지"(아드 아나)는 고통이 얼마나 지속되는 지를 질문할 때 사용되는 문구이며, "부르짖어도"에 사용된 히브리어 '샤바'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요청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2절).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자의 외침을 듣지 않으신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그의 불평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유다와 그의 신실한 사람들이 "강포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강포'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마스'는 압제와 불의의 상황을 기술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아마도 이 강포는 여호야김의 통치 기간에 가득 찼던 불의와 유혈을 지칭할 것이다.

하박국은 죄악이 득세하는 현실에 의문을 가졌다(3절). 그는 하나님께서 왜 죄악과 패역 그리고 겁탈과 강포를 방관하시는지를 물었다. '죄악'(아벤)은 거짓, 우상숭배, 불평등을, '패역'(아말)은 노역 등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겁탈(쇼드)과 강포(하마스)는 파괴와 폭력을 의미한다. 이들 단어는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힘 있는 자들은 폭력과 강압으로 약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주어야 할 사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변론'(리브)과 '분쟁'(마돈)이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변론과 분쟁은 약자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조치가 아니었다. 약자를 합법적으로 강탈하기 위해 사법 체계를 악용한 폭력과 파괴의 수단일 뿐이었다. 하박국이 더 괴로웠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부정의에 눈을 감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보다'를 뜻하는 두 개의 동사 '라아'와 '나바트'는 사역 형태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예언자만이 지닐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을 부여하셔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셨다.

4절은 앞에서 언급한 부정과 불의 때문에 법(토라)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못하였으며, 정의(미슈파트)가 즉각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마치 추위로 마비된 손가락처럼 법체계가 힘을 잃었다. 설사 바른 판결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강력하게 시행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를 구현할 의인들이 악인들에 의해 담장에 둘러싸이듯이 포위되어 있어 표현과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박국은 악인과 의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악인과 의인은 시공간에 제한되어 있지 않은 불특정의 다수를 가리킬 수 있다. 하박국은 과거 유다 백성들이 그러했듯이, 악인들에 의해 포로가 되어 정의가 왜곡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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