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미디어 시대의 믿음(하박국 2:1~4)

초고속 미디어 시대의 믿음(하박국 2:1~4)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8

윤동녕 교수
2022년 06월 08일(수) 16:53
미디어는 온 세상에 복음을 퍼뜨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이자 수단이다. 하나님께서도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셨다. 때로는 천사나 사람을 미디어로 사용하셨고, 때로는 말이나 글과 같은 미디어를 사용하셨다. 하박국을 향한 하나님의 두 번째 응답을 담고 있는 2장 1~4절에도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예언을 전달하는 시청각 매체들,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판이 다 미디어이며, 이들 모두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계시(2:1~3)

하박국은 "파수하는 곳"과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1절). 파수하는 곳과 성루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파수꾼이 근무하는 '초소'이자 '망대'이다. 하지만 그가 실제 초소에서 응답을 기다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하박국뿐 아니라 다른 예언자들도 자신들을 파수꾼('초페')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사 21:6~12; 겔 3:17~21; 33:1~9; 호 9:8). 따라서 파수하는 곳에 올라갔다는 하박국의 주장은 실제일 수도 있지만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시 130:6)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예언자의 심정을 상징할 수도 있다. 파수꾼은 주로 시각을 사용해 적진을 감시한다. 그래서 하박국도 파수꾼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지 기다리며('차파', '지켜보다') 바라보았다('라아'). 하박국은 청각적 수단뿐 아니라 시각적 수단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 기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기대대로 "묵시"(하존)라는 시각적 수단을 통해 응답하셨다(2절). '하존'은 '보다'를 뜻하는 동사 '하자'에서 파생되었으며, '차파'나 '라아'와 마찬가지로 예언의 시각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묵시를 "판"에 분명하게 기록하여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하셨다(2절). '판(루아흐)'은 '돌판', '목판', 혹은 '토판'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영어 성경은 대부분 '태블릿(tablet)'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은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태블릿 컴퓨터를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빨리 이동하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계시의 말씀을 태블릿에 분명하게 기록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판'에 쓰라고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예언 성취의 때에 관한 것이다. 예언은 '정한 때'에 이루어진다. '정한 때'는 인간이 지정한 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때이자, 하나님께서 확정하신 날이다. 따라서 사람은 이때를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박국 예언의 청취자들이 살던 시대는 속도의 시대였다. 하박국과 비슷한 시대에 기록된 나훔서와 스바냐서에는 속도를 나타내는 문구들이 많이 등장한다(나 2:4; 습 1:14). 하박국의 청취자들은 마병과 병거의 속도가 마치 번개처럼 빠른 것을 목격한 바 있다. 때문에, 여호와의 날도 그처럼 빠르게 임하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종말과 심판의 날은 지연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 심판의 때는 시작되었다. 마치 초고속 열차의 승객들이 속도를 느끼지 못하듯이, 하박국의 청취자들도 그때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을 뿐이다. 비록 더디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단지 하나님께서 "정한 때"를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할 뿐이다.

속도의 시대에 요구되는 믿음(2:4)

4절은 두 부류의 사람의 태도를 대조하고 있다. 하나는 정직하지 못한 자이며 다른 하나는 의인이다. 정직하지 못한 자는 바르지 않으며 교만하고 스스로 자신을 부풀리는 자이다. 하박국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이들은 갈대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자는 역사적 배경과 관계없이 어느 시대건 자기 자신이 정한 때를 기준으로 사는 모든 교만한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나태해지거나 방자해지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을 통해 이들에게 "멋대로 설치지 말아라"(공동번역)하고 경고하신다.

한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의인(차디크)'은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며, '믿음(에무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이며 '신실함'이다.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묵시의 때를 정하셨다는 사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좁게 보면 '의인'은 신실하고 정직한 유대인이지만 넓게 보면 신실한 성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은 상황이 변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으며 변함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묵시가 실현될 것을 믿고 그때를 기다릴 줄 안다. 미디어 시대는 속도의 시대이다. 빠르게 전달되고 빠르게 응답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오늘날은 역사상 가장 속도가 빠른 시대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항상 그 속도가 같다.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아니고는 묵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속도의 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가 요구된다.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