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소리 없는 외침(하박국 2:5~20)

약소국의 소리 없는 외침(하박국 2:5~20)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윤동녕 교수
2022년 06월 23일(목) 07:14
바벨론은 이웃나라들을 폭력으로 정복했다. 하지만 유다와 같은 약소국들은 바벨론의 만행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선지자 하박국은 2장 5~20절에서 이러한 약소국들 편에 서서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하고 있다. 구약학자들은 본문을 다섯 개의 소단락으로 구분한다(5~8절, 9~11절, 12~14절, 15~17절, 18~20절). 이 소단락들은 대개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며, 재앙의 이유가 뒤따르고 있다. 하박국은 같은 단어와 연설 방식을 반복함으로써 예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청중들에게 예언의 내용을 각인시키고 있다.

약자들의 항변

갈대아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헛된 말로 남을 속이고 교만하며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몰랐다. 그들의 욕심은 마치 목구멍을 크게 열어젖혀 무엇이든지 빨아들이는 죽음의 땅 '스올'과 같았다(5절). 스올에서는 죽은 자가 그림자처럼 힘을 잃는데, 바벨론에 정복된 나라들과 백성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제국의 통치 하에 고통을 당하여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힘을 잃었기에 바벨론을 공격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담"과 "조롱하는 시"로 풍자할 뿐이다(6절). 속담은 '비유'나 '비교'를 뜻하는 '마샬'의 번역이며, 조롱하는 시는 '수수께끼'를 뜻하는 '히다'의 번역이다. 비유와 수수께끼는 강자에 직접적으로 대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약자의 언어'이다. 간접적인 약자의 수사학은 "화 있을진저"(호이)라는 외침에 잘 표현되어 있다. '호이'는 '아이고!'처럼 장례식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하박국은 힘없는 나라들과 백성들을 대신하여 짐짓 장례를 치르는 척하며 바벨론을 조롱하고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고 있다.

바벨론을 향한 조롱과 풍자

바벨론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아 부유하게 된 나라이다(6절). 그러나 남의 것으로 쌓은 부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결국 바벨론은 "볼모 잡은 것" 때문에 "무겁게 짐진 자"가 될 것이다(7절). 이는 이웃 나라들이 빚쟁이들이 되어 집달관처럼 갑자기 들이닥쳐 그들의 모든 것을 탈취할 것이라는 뜻이다. 바벨론의 부는 되갚아야 할 부채에 불과하다. 폭력과 피 흘림에서 살아남은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부를 같은 방식으로 약탈할 것이기 때문이다(8절). 설사 자신만 살겠다고 높은 곳에 집을 지은 고관이나 왕들도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9절). 그들이 이웃 나라로부터 취한 "부당한 이익"은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많은 민족을 멸하고 챙긴 부당한 이익은 바벨론의 "집에 욕을 부르며",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10절). 바벨론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집에 들보를 올리고 돌로 담을 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들보와 돌담은 오히려 무죄한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를 고발하는 증언대가 될 것이다(11-12절). 바벨론 제국 건설은 강한 군사력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다(13절). 바벨론은 여러 나라를 정복해 제국을 건설했지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에 비할 것이 못 된다(14절).

바벨론은 이웃에게 술을 권하였다(15절). 하지만 하박국은 여기에서 술중독자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신 술은 "분노"였기 때문이다. 분노(헤마)는 '불같은 화'이다. 바벨론 때문에 가슴에 불같은 화를 품은 이웃은 자제심을 잃고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는 전쟁에서 패해 옷을 벗긴 것처럼 수치를 당하게 됨을 의미할 뿐 아니라, 거대 제국에 의해 권위와 위엄이 짓밟히고 자존심과 정체성을 상실한 나라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약소국가들은 강대국의 압제에 직접적으로 대항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같은 분노를 퍼붓지만, 이는 자신들의 연약함을 자인한 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약소국만 당할 것이 아니다. 바벨론도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을 받게 되어 영광을 잃고 능욕을 당할 것이다(16절). 여호와의 잔은 바벨론에게 쏟아 부어질 분노와 심판의 잔이다.

바벨론의 왕들은 정복한 나라에 거대한 신상들을 세우고 그것을 예배하게 하거나, 자신들의 동상을 세워 경배하게 하였다. 하지만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은 아무런 힘이 없다(18절).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라고 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19절). 왜냐하면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며(1:11), "거짓 스승"(모레 샤케르)에 불과한 우상에 신탁을 구하는 자들이다(18절). 생명의 말씀과 참된 교훈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20절). 이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건, 하늘에 있건 그 위치는 중요치 않다. 독일의 신학자 에벨링(G. Ebeling)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압제와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계신다.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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