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스바냐 1:7~18)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스바냐 1:7~18)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2

윤동녕 교수
2022년 07월 14일(목) 16:22
모든 사회는 그 지도층들이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한다. 때문에,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사회는 혹독하게 질책한다. 스바냐서도 이처럼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예언자 스바냐는 이들이 '여호와의 날'에 혹독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단어를 7절에 한 번, 14절에 두 번 사용하고 있지만, 이에 준하는 '여호와의 희생의 날'(욤 제바흐 아도나이, 8절), '그날'(욤 하후, 9, 10절), 그리고 '여호와의 분노의 날'(욤 에브라트 아도나이, 18절)이라는 단어들을 통해 지도자들에게 임할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이 될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직면한 유다 백성에게 침묵하라고 명령한다(7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의 날에 희생제물이 될 자들을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우선 '방백들과 왕자들'(8절)과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탄핵 대상이다. 방백(사르)은 정부의 고위 관료를 총칭한다. '왕자들'로 번역된 '브네 하멜렉'은 '벤 하멜렉'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왕의 아들들'을 뜻한다. 이들은 왕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모두가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왕의 아들 여라므엘'(렘 36:26)과 '왕의 아들 말기야'(렘 38:6)는 옥리(獄吏)와 경찰 업무를 담당한 행정 관료였다. 스바냐는 이들을 가리켜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며, 이들의 문제점이 이방의 문화를 답습하는 것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이방 풍습에 대한 동경은 문턱을 뛰어넘는 자들(9절)에 대한 언급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이 풍습은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제사장이나 신도들이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는 블레셋의 풍습을 생각나게 한다(삼상 5:4~5). 지도자들이 이방 풍습에 동화되었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이방 풍속에 젖었다는 것은 이방 권력의 앞잡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방 권력과 결탁해 '포악과 거짓'으로 약탈한 물건들로 자신들의 집을 가득 채웠다(9절).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선언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어가고 있다. 우선 '어문'(10절)은 예루살렘의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생선 시장의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어문을 통해 두로와 해안지역으로부터 들어오는 물고기가 수입되었다. '제이 구역'(미슈네, 10절)은 예루살렘의 서쪽 지역이다. 제이 구역을 향한 심판의 결과 '울음소리'가 나오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은 원래 울음보다는 기쁨과 웃음이 넘치던 지역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막데스'(11절)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단지 제이 구역과 성전 사이의 한 지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역은 성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상업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막데스 주민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가나안 백성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인은 상인이나 무역업자를 지칭한다. 당시에는 아직 화폐가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상인들은 은이나 금으로 거래하였다. 상업지역에 거주하는 경제적 지도층은 은과 금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12절)고 말하곤 했다. 그들은 풍요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였다. 재화는 바알의 소관이지 여호와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한다 해도 은과 금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오판했다(18절).

10절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청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날에 작은 산들이 무너질 것이다. 작은 산은 예루살렘 지도층들의 고급 가옥이나 별장이 위치했을 언덕을 지칭한다. 그들의 집에는 재화가 가득했으며, 언덕에 포도원을 가꾸고 그 인근에 제2, 제3의 별장을 건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집은 곧 황폐해질 것이고, 새로 건축한 집에는 살아보지 못하고, 포도의 결실도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13절). 그들이 재산을 쌓아놓은 언덕에서는 마치 지진을 당한 것처럼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작은 산뿐이 아니다.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 확신했던 성벽과 망대도 마찬가지이다(16절). 그곳을 지키던 군인들은 힘을 잃고 크게 울부짖을 것이다(14절). 예루살렘 지도층은 기쁨과 희망에 찬 여호와의 날을 기대했다. 하지만 여호와의 날은 슬픔과 고통의 날이며 파괴와 패망의 날이 될 것이다(15절). 그날에 그들이 의지하던 권력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재력과 그들이 추종했던 이방 나라들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층은 당시 과학과 세계관을 좌우하던 이방의 선진 문화와 종교에 의지하였던 지성인이었으나, 여호와의 날이 임할 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17절), 자신들의 지성으로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했다. 예루살렘 지도층은 유다 백성들을 정의와 공의의 길로 인도할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따랐다. 이들의 불경건과 부도덕성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따르도록 하였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의 심판이 제일 먼저 지도층에게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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