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피할 작은 희망마저 저버린 나라들(스바냐 2:1~15)

심판을 피할 작은 희망마저 저버린 나라들(스바냐 2:1~15)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3

윤동녕 교수
2022년 07월 20일(수) 14:21
스바냐가 선포한 여호와의 날의 영향력은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온 세상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유다의 군사력은 앗수르와 같은 대제국을 상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권능은 아무리 강한 민족, 아무리 먼 나라라 할지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스바냐는 2장에서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피할 희망을 선포하고(1~3절), 이 희망마저 저버린 나라들에 대한 멸망과 심판을 선언한다(4~15절).



심판을 피할 작은 희망(1~3절)

예언자 스바냐는 "수치를 모르는 백성"에게 모이라고 명령한다(1절). "수치를 모르는 백성"은 직역하면 '열망(갈망)하지 않는 나라'로서 하나님에 대해 무심한 모든 나라를 뜻한다. 스바냐는 "모일지어다"를 두 번 반복하며 모임의 긴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2절에 세 번 등장하는 "지나가기 '전'", "내리기 '전'", "이르기 '전'"(브테렘)이라는 시간부사와 "날이 겨 같이"라는 경구에도 긴박감이 드러나 있다. 이 긴박한 명령은 종말을 맞이하는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나게 한다. 여호와의 날은 이미 결정되었으며, 불같은 분노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조차도 여전히 희망은 살아있다. 그 희망은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에게 있다. 개역개정에는 생략되거나 서술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구하라'(혹은 '찾으라')라는 세 개의 명령어가 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반드시 유대인일 필요는 없다. '세상의 모든' 자들도 가능하다. 이들은 비록 유대인처럼 여호와를 알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본성에 따른 규례(미슈파트)를 지키며 정의를 행하는 '겸손한 자들'(아나빔)이다. 이들은 정의(미슈파트)뿐 아니라, '공의(체테크)'와 '겸손(아나바)'에 기초한 삶을 산다. 정의가 올바른 사회적 관계라 한다면 공의는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겸손은 올바른 이웃과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겸손한 자들'만이 "주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새번역)



이웃 나라를 향한 심판선언(4~15절)

스바냐는 이웃 나라들에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데, 죄상보다는 그 결과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교만이 구원의 여망을 상실하게 하였기 때문이다(10, 15절). 블레셋은 "해양 주민 그렛 족속"(5절)의 후손으로 해변의 항구와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철기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문명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화려했던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목동들이 쉬는 움막이 들어서게 될 것이고, 바닷가의 땅은 풀밭이 되어 양 떼의 먹이가 될 것이다(6절). 블레셋은 유다와 비슷한 시기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지만,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대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유다 족속의 남은 자"가 바닷가 일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7절). 한편, 모압과 암몬은 유다 백성을 비방하고 조롱하였다(8절). 암몬은 사사 입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자주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삿 11:12~28), 모압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며(왕하 3:1~27), 여호야김 때는 연합군을 이루어 유다를 침공하기도 하였다(왕하 24:2). 이들은 "만국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음"(10절)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구스 사람(12절)은 나일강 상류 지역에 거주하던 에티오피아 사람인데, 한때 애굽을 지배했던 강력한 국가로 그 영향력이 오랫동안 유다에게까지 미쳤다.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왕궁 내시로 활동했다는 예레미야의 기사는 그 영향력의 일면을 보여준다(렘 38:7~12). 그러나 그들도 여호와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북쪽의 앗수르는 유다를 가장 괴롭혔던 나라였다. 산헤립이 건설한 니느웨는 앗수르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도시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앗수르를 치고 니느웨를 사막처럼 메마른 황무지로 만들었다(13절). 화려했던 궁궐을 지탱했던 백향목은 삭아 버리고, 그곳에 온갖 들짐승이 떼를 지어 누울 것이며, 갈가마귀(개정 '당아')와 올빼미(개정 '고슴도치')가 깃들고, 그들이 창문턱에 모여 앉아 지저귈 것이다(14절). 니느웨는 아무런 걱정 없이 거주할 수 있는 '기쁜 성'이며,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라고 자부하였지만(15절), 실상은 거짓과 포악이 가득한 '피의 성'(나 3:1)이었으며, 그의 교만 때문에 멸망 당하여 이웃의 비웃음을 받게 되었다. 스바냐는 유다 백성에게 이웃 나라들에 임할 심판을 선포하며, 마지막 때에 '무서운 하나님'(노라 아도나이)에 의해 이방의 거짓 신들이 힘을 잃어 무너지고 이를 목격한 모든 나라와 민족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라는 희망을 선포하였다(11절).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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