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기다리라(스바냐 3:1~13)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스바냐 3:1~13)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4

윤동녕 교수
2022년 07월 27일(수) 13:57
스바냐는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을 선언한 후(2:4~15) 그 화살을 예루살렘으로 돌린다. 스바냐의 예언을 들었던 청중들은 대적들의 멸망을 들었을 때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이 선포되었을 때 환호가 비명과 절망의 신음으로 급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서 구원의 소망이 엿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선언(1~8절)

스바냐는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그 성읍"(1절)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위치한 거룩한 곳이자 궁궐에서 근무하던 고위 관료들이 거주하던 행정사법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예루살렘을 폭력이 난무하는 죄악의 성읍으로 변질시켰다. 특별히 고위지도층의 문제가 심각했다. 3절에 등장하는 '방백들'은 마치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고 울부짖듯이 백성들의 재산을 탈취하였으며, '재판장들'은 사냥감을 밤새워 먹어 치우는 이리처럼 사회적 약자의 재물을 갈취하였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여전히 세상을 밝히고 계셨지만, 불의한 재판관들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다(5절). 스바냐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도 고발하였다(4절). 예언자들은 신중하지 못하였으며 경박한 언사와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기만하였다. 성전을 관리하고 거룩한 제사를 집행해야 할 제사장들도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성소를 더럽혔으며, 공의로운 율법을 불의하게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이방 나라와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 선언하셨다. 한때 강대했던 이방의 성읍들은 쇠락할 것이고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왕래로 떠들썩한 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공동번역) 황무지로 퇴락할 것이다(6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이웃 나라들의 비극적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 거듭 전하여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그의 말씀에 의뢰하지도 않았다(2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의 거처에서 머무를 수 있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악을 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7절).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이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라고 말씀하신다(8절). 이 명령에는 애증(愛憎)이 담겨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재자가 되셔서 이방의 나라와 민족을 모아 심판하시는 날에 불의한 예루살렘도 함께 심판하실 것이다.



구원의 약속(9~13절)

심판의 날은 종말의 날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징계의 수단일 뿐이다. '그때'(아즈, 9, 11절)와 '그날'(바욤 하후, 11절)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당한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날에 먼저 여러 백성의 입술(사파)을 원래대로 돌려서(하파크) 깨끗하게 할 것이다(9절). 입술은 불의한 판결과 거짓 예언이 시작되는 곳이다. 불공정과 거짓으로 더러워진 입술은 정화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정의와 공의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구스(에티오피아) 강 저편에 추방되었던 자들도 돌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내가 흩은 자"(10절) 중에는 한때 불공정한 재판과 거짓 예언으로 예루살렘을 심판에 이르게 한 지도층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의 범죄 행위로 그들을 수치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산의 하나님께서 다시는 거만하지 못하도록 교만거리와 자랑거리를 없애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11절).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대비해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두셨다(12절). 곤고한 자(아니)와 가난한 자(달)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자들이다. 하지만 곤고하고 가난한 자가 꼭 경제적 하위계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새번역)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13절)로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불의한 재판관처럼 불공정(아블라)하지 않았으며 거짓 예언자처럼 거짓말(카자브)을 하거나, 거짓된 혀(라숀)로 입(페)을 놀려 이웃을 속이지 않았다. 스바냐는 '입술'(9절)과 '혀'와 '입'(13절)이라는 단어를 통해 죄인과 의인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약 3:6)이며 작은 지체이지만 우리의 온몸을 더럽힐 수 있다. 입술이 정결한 자는 "먹고 누울지라도"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키시기 때문이다(시 141:3).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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