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딸아 기뻐하라(스바냐 3:14~20)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스바냐 3:14~20)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5

윤동녕 교수
2022년 08월 10일(수) 07:52
스바냐는 그의 예언을 경고와 심판으로 시작한다. 그는 여호와의 날에, 유다와 예루살렘뿐 아니라 이방 나라들, 그리고 심지어 자연 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스바냐는 심판의 날에 조차도 가난하고 겸손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였다(3:12~13). 때문에, 스바냐의 심판 예언에는 희망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희망의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약한 자에게 전해지는 구원의 복음(14~17절)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은 예루살렘과 그 주민들을 뜻하는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딸'(바트)이라는 단어는 지역명과 함께 사용될 때 그 지역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14절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브네 이스라엘, 직역하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나 '백성' 대신 '딸'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구원의 날에 노래하고 외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스바냐서에는 '방백', '왕자', '재판장' 그리고 '제사장'처럼 사회 지도층이나 권력가와 같은 강한 남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의 등불이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으로 몰아가는 원흉이 되었다. 때문에, 구원의 기쁜 소식이 당시 인정받지 못했던 무명의 예루살렘의 딸들을 통해 먼저 선포되리라는 예언은 주목할 만하다. 구원의 복음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점은 "저는 자"와 "쫓겨난 자" 그리고 "수욕 받는 자"가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되리라는 스바냐의 예언과(19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삿 61:1; 눅 4:18).

이처럼 약한 자들이 제일 먼저 구원받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기 때문이다(15절).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압제하던 거짓 지도자들 때문에 벌어진 징벌과 심판을 끝내시고, 원수들을 쫓아낼 것이다. 원수들은 장차 예루살렘을 파괴할 바벨론을 의미할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던 세력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는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의 백성을 격려하시고,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시며 힘을 잃고 약해져 사기가 저하된 그의 백성에게 활력을 불어넣으실 것이다(16절).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15절)은 또한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용사(깁보르)로서 그의 백성 가운데 함께 하신다(17절). 하지만 용사이신 하나님은 그의 힘과 권세를 칼이나 창이 아닌 감정으로 표현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잠잠히 사랑하시며 그들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노래를 부르실 것이다.



수치가 명성으로 역전됨(18~20절)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날에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라고 약속하신다(18절). 이들은 절기를 빼앗겨서 슬퍼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절기를 지키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조차 절기를 오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모스 선지자가 지적하였듯이 어떤 이들은 형식적으로 절기를 지키거나 가난한 자를 학대하여 빼앗은 제물로 절기를 축하하였다(암 8:4~6). 또 어떤 자들은 이방의 달력에 따라 절기를 지키도록 강요하였다. 이 달력은 경제활동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천체 운행의 법칙과 인간의 운명을 결합하여 율법의 정신을 훼손시켰다. 때문에,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절기를 지키려는 신앙인들은 수치와 핍박을 당하였다. 하지만 주의 구원의 날에 절기가 회복되면(나 1:15) 그들의 두려움과 슬픔은 사라지고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구원의 날에 회복될 "저는 자"(하촐레아)와 "쫓겨난 자"(하니다하)는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처럼 여성형이다(19절). 따라서 이들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 "저는 자"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사회로부터 장애가 있다고 낙인찍힌 사람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들은 방백들에게 재산을 약탈당하고 경솔하고 간사하며 성소를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 중앙의 종교인들(습 3:3~4)에게 밀려나 사회의 외곽으로 쫓겨났다. 중앙의 종교인들에게 "저는 자"는 '저는 동물'처럼 부정한 것이었으며 수치거리였다. 하지만 구원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역전시킬 것이다. "저는 자"와 "쫓겨난 자"는 회복될 것이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수치가 변하여 명성과 칭찬이 될 것이다(20절).

윤동녕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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