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상생이 생명/교회가 협동조합 시작 십일조 지키는 마을주민들

마을공동체 상생이 생명/교회가 협동조합 시작 십일조 지키는 마을주민들

[ 우리교회 ] 마을살리기에 앞장서는 충남노회 소향교회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7년 11월 20일(월) 16:13
   
 
 

  【충남 홍성=최은숙 기자】마을목회의 시작은 바로 그 마을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 충남노회 소향교회 이재건 목사는 54년 된 교회에 23번 째 목회로 부임했다. 교회는 그 긴긴 시간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서로가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면서 교회의 역할을 잃었다.

사단의 역사 조차 없는 '죽은' 교회. 가을의 낭만과 정취를 평화롭게 품어내는 소향리의 작은 마을에 군고구마 냄새처럼 정겹게 자리한 소향교회는 안타깝게도 꽤 오랫동안 주민들의 외면을 받은채 '사고 교회'로 낙인찍혀 있었다. 이재건 목사는 20여 년을 이민목회로 섬기던 중에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가방 하나 들고 귀국해 농촌목회를 시작했다.

"셋째 아들이 한국에서 목회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말씀이 계속 생각났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오는데 더이상 견딜 수 없더라"는 이 목사가 소향교회에 첫 부임했을 당시 교인은 고작 6명. 그러나 이마저 신앙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제자는 몇 명인지도 헷갈려했다고 한다.

목회자에 대한 불신도 한 가득이었다. 심방을 다니고 마을에 인사를 다녀도 '곧 떠날 사람'이라며 마음을 열지 않았다. 교회는 여전히 외면받았다.

이 목사는 가장 먼저 영주권을 포기했다. 이 목사는 "영주권 받으려고 9년을 고생했는데 15분만에 소멸했다"면서 "바로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을 발급받고 교인들에게 이젠 '책임지라'고 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소향리 주민'으로서 섰을 때 비로소 주민들이 교회를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다. 전소가 두 번이나 났던 사택을 둘러보며 "도울 것이 없냐"고 묻기도 했다.

'마을 주민'으로서 마을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4시간 전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고령화로 인해 초등학생 1명과 중학생 1명만 빼고는 마을 주민이 모두 70, 80대 노인인 마을에서 이 목사는 자녀들을 대신했다. 함께 밥을 먹고 건강을 살피고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미국 이민 시절 안해본 일이 없었던 이 목사는 그 때 배워둔 목공, 건축기술로 교회 한켠에 교육관을 세우고 24시간 연탄불을 피운다. 혹시나 돈 아낀다면서 찬 바닥에 누울 노인들을 생각한 배려다. 덕분에 교육관은 '사랑방'역할을 하면서 지역의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다. 쓰레기 더미에 방치됐던 교회가 이제는 마을의 쉴터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마을에 귀농귀촌인구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이 목사는 '마을살리기' 일환으로 귀농귀촌인들을 위해 집을 소개하고 자신의 목공, 건축 기술을 활용해 인테리어까지 해준다. 이렇게 마을과 가까워지면서 '문닫힐 교회'는 어느새 60여 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3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보듬어 주면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제적으로 고단한 주민들의 삶이었다. 충남노회 협동조합의 창립 멤버인 이 목사는 교회 장로 한명과 생산자조합원으로 가입한 후 농산물 판로를 열었다. 장터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물건을 팔기도 한다. 특히 소향리의 고구마는 맛도 좋아 상품으로 최고임을 자랑할 수 있었기에 수입도 좋다. 협동조합을 통해 농산물 판로를 열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전보다 좋아졌다.그는 이 때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반드시 수입의 10%는 십일조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 었다.

"협동조합의 시작은 영혼구원과 시골교회의 자립, 그리고 교회의 성장에 있다"는 이 목사는 "최근 협동조합으로 수입에 대한 성공사례가 부각되고 있어 영혼구원에 대한 사례가 묻힌다"면서 "십일조는 내 사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조합을 탈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향주민들은 무조건 십일조를 한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으로 소향교회는 지난 2015년 자립을 선언했다. 농촌에서 목회를 하고, 특히 마을목회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렇지만 이 목사 또한 주민들이 교회를 떠날까 염려하는 목회자다. 교회가 마을의 센터가 되었고 목회자가 마을의 리더가 되어 마을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목사에게는 또 원칙이 하나 더 있다. 명절에는 절대로 교회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평생 철학이 목회자는 명절 때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는 이 목사는 "명절 때는 외지로 나갔던 소향리 출신들이 돌아온다. 이 때 모교회를 들러 목사를 만나고 담소를 나누면서 그들은 평안을 느낀다"면서 든든한 고향교회가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는 말했다. "요즘 '마을교회, 마을교회'하는데 한국교회는 원래가 마을교회였다. 누구나 와서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곳. 나그네가 길을 잃고 헤매면 하룻밤 재우고 밥 먹여 보내는 곳. 그것이 교회였다. 또 이것이 한국 정서이고 한국 교회의 정서다"라고.

그래서 소향교회는 마을과 교회를 구분짓지 않고 공동작업장을 만들어 마을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자 한다. 서울의 중대형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김장을 진행할 예정이다. 소향리 주민들이 농사지은 건강한 배추와 재료들로 도시교회 교인들과 김장을 담그는 일이다. 또한 농산물을 가공해 판로를 넓힐 계획이다. "우선은 교회로 사람을 오게 해야 한다"는 이 목사의 열정을 이제는 마을이 인정한다. 주민들이 먼저 "목사님 말만 들으면 된다"며 인식이 바뀌었다. 1년에 한번 크리스마스에는 노인회가 교회를 찾는다.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취재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면서 다시 한번 뒤돌아 십자가 탑을 쳐다보았다. 우리네 교회는 언제나 그랬었다. 이웃들 옆에서 그들의 아픔을 살피면서 함께 울고 웃었다. 어려운 일이든 기쁜 일이든 목회자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교회는 높은 담을 세우고, 목회자는 권위를 내세우면 '그들만의 세상'으로 지탄받지 않았다. 교회는 이렇게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었다. 대형교회든 농촌의 작은 교회든 자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교회가 마을의 위로가 된다는 사실 하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던' 그 사실을 깊이 묵상해본다.

*****박스

"신학교에서 배운 이론보다 아버지의 삶에서 배웠던 실천신학이 지금의 목회에 가장 큰 밑거름이다."

이재건 목사는 충남노회에서 안수 목사 1호로 기록된 이현 목사의 셋째 아들이다. 이현 목사는 민족운동 활동 중에 소명을 받고 충남에서 안수를 받고 평생을 농촌목회에 헌신하며 27개 교회를 개척했다.

"아버지는 복음전도에만 힘쓰셨다. 자식들은 밥을 먹는지 굶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생했다"는 이 목사의 말처럼 평생을 농촌목회, 농촌살리기에 애를 썼던 이현목사는 아들인 이재건 목사를 함께 데리고 다니며 농촌의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게 했고, 교회가 농촌의 어려운 민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특히 이현 목사는 당시 '예농회' 활동을 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고, 한국 농촌에 맞는 농법과 농작물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 일에 이재건 목사가 앞장서 할 수 있게 했다. 이재건 목사는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교육을 받고 연구를 했는데 그 때 배운 지식들이 현재 소향리의 고구마, 땅콩 등 다양한 농사에 적용되었고, 실제로 결과물도 좋아 인기가 높은 '농업지도자'가 됐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평생 목사는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로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이 목사는 "사례비 외에는 단 1원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헌금한다. 자녀들이 주는 용돈도 자녀들의 이름으로 헌금을 한다"면서 "'십일조'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사비로 교회 건축비를 다 댄다"고 말했다.

"목사가 살과 뼈를 깎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그는 어느새 미국에 두고 온 삼남매를 그리워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기도 한 이 목사. 그러나 여느 목회자들이 그렇든 그도 "나는 목사이기에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오늘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그는 어쩌면 오늘도 고구마 박스를 뒤엎고 "제대로 된 물건을 담으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악역을 담당해야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가 얼마나 소향리를 사랑하는지 소향리 주민들이 알기에 순순히 그 의견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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