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빠르게 대응하라!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빠르게 대응하라!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류호성 교수
2020년 11월 13일(금) 08:58
'불의했지만 칭찬받는 청지기의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이해하기가 가장 어렵다. 또한 잘못 이해하면 4세기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 로마 황제로 AD 361~363년 재위)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라고 가르쳤다고 크게 오해할 수 있다. 이 비유에 논쟁점들을 살펴보면 첫째, 자료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 견해는 1~8절은 비유이고, 9~13절은 비유에 대한 해석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비유 해석과 관련된 9~13절은 예수님의 독립된 전승인데, 이것을 ①누가가 가져와 여기에 덧붙였다고 말한다. 또한 혹자는 그 자체를 ②누가가 창작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③초대 교회가 이 비유를 독립된 세 방향으로 해석한 것을 합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④예수님이 1~13절 전체를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1~13절 전체를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문장의 대가인 누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9~13절을 굳이 덧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④의 견해가 적절하다.

둘째, 8절의 '주인'(호 큐리오스)에 대한 논의이다. 곧 '주인'이 누구를 뜻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혹자는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뜻한다고 말한다(이러한 자들은 1~7절이 비유이고, 8~13절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라고 주장). 그런데 대부분의 견해는 3절과 5절의 '큐리오스'가 '주인'을 뜻하기에, 8절의 '큐리오스'도 '예수님'이 아닌 '주인'을 뜻한다고 말한다.

셋째, '청지기'(오이코노모스)의 신분과 업무에 관한 것이다. 혹자는 이 청지기가 주인의 '노예'로 그 집에서 성장하면서 직분의 훈련을 받은 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해고되면 먹고 살기 위해 독립적으로 일거리를 찾아야 하며(3절) 또한 호의를 베푼 사람이 자기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에(4절), 자유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의 업무는 주인의 토지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6~7절의 채무는 대출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소작료에 관한 것이다.

넷째, 어떤 이유로 주인은 그 청지기를 '불의한'(아디키아스) 청지기로 불렀는가(8a절) 그 근거는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했기'(디아스코르피제인) 때문이다(1절). 동사 '디아스코르피제인'은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재산을 흥청망청 사용한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것과 똑같은 동사이다(15:13). 주인은 이것을 소문으로 듣고, 청지기에게 확인차 물었으나(2a절), 그가 이에 대해 변호하지 않은 것을 보면 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청지기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6~7절에서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기 때문에 불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해고의 통보를 구두로 받았으나(2b절), 그것은 공식적으로 선포된 것도 아니고 또한 주인에게 채무 관련 장부를 넘기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의 직책은 아직 유효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무와 관련해서 삭감한 그의 행동은 불의하다고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청지기가 채무자들로부터 받을 수수료 내지는 이자를 삭감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것이 없다. 그런데 혹자는 청지기가 [올리브] 기름에 대해서 50%나 삭감해 준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00%의 이자가 없던 일은 아니었으며, 특히 소비 물자(곡식, 포도주, 기름)은 특별히 높은 이자로 대여되었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순수한 [올리브] 기름의 경우는 지역마다 가격의 차가 20배나 나기에(요세푸스, '자서전' 74~76), 청지기가 기름과 관련해서는 아주 높은 수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다섯째,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프로니모스 에포이에센) 칭찬한다(8a절). 어떤 면에서 5~7절의 청지기 행동이 '지혜로운가'? 여기서 ①'지혜 있게'에 해당하는 '프로니모스'에는 '영리하게, 민첩하게, 재빠르게'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고, 또한 종말론적 차원을 파악한 사람의 행동을 묘사하는데 상용된다(마 7:24; 24:45; 25:2~9; 눅 12:42). 결국 청지기는 자신의 생애에 최후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신속하게 자기의 소유를 버리는 결단을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지혜로웠다. 그런데 ②청지기의 이러한 행동은 채무자를 포함하여 지역 사람들에게 주인을 수전노가 아닌 후덕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곧 주인의 명예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주인은 한때는 불의했지만, 새롭게 변한 청지기를 칭찬한 것이다.

여섯째, "'불의의 재물로'(에크 투 마모나 테스 아디키아스) 친구를 사귀라"(9a절)에서, '불의의 재물'은 '부정하게 모은 재물'이 아니다. 이것은 돈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관용어로, 말하자면 '세상적인 돈'을 말한다. 이렇게 돈을 관대하게 나누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영원히 거할 처소"(9b절)를 주신다.

결국 이 비유는 청지기가 한때는 주인의 재물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했지만, 직무 정지라는 생의 위기의 순간에 재빨리 판단하여 자신의 탐욕을 버림으로써 주인의 명예를 높이는 지혜로운 일을 한다. 이런 점에서 주인은 그를 칭찬한다. 결국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1a절), 이 비유는 돈과 재물에 대해 탐욕에 빠지지 말고(13절),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관대하게 사용하라는 제자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도의 실천은 불의로 인해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재빠르게 대응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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