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권력을 바르게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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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8 자색 옷을 입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

류호성 교수
2020년 11월 20일(금) 09:34
이 비유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언급된 것으로 주요 논쟁점들을 살펴보면 첫째, 자료에 관한 것이다. 이 비유는 누가복음에만 나타나는 특수 자료(L 자료)이기에 ① 혹자는 이 비유 전체를 누가가 창작했다고 말한다. 또는 ② 비유의 전반부(19~26절)는 사후에 운명이 뒤바뀐 애굽의 민담 '시-오시리스(Si-Osiris)의 이야기'나 유대의 민담 '가난한 학자와 세르 바르 마얀(Bar Majan)의 이야기'에서 유래했을 것이고, 후반부(27~31절)는 예수님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는 ③ 정반대로 전반부는 민담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후반부는 누가복음 24장과 비교해서 부활의 모티브와 '모세와 선지자'에 대한 언급(19:29; 24;27, 44)에 대한 공통 내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 내지는 누가의 창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이 수난예고에서도 말씀하셨고(예, 막 8:31), 또한 '모세와 선지자'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을 뜻하는 '선지자와 율법'(막 11:13), '율법이요 선지자'(마 7:12)라는 동일한 표현이기에 꼭 누가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④ 이 비유 전체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반대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둘째, 문맥에 따른 이해이다. 16장에 두 개의 비유가 나타나는데, 그 시작인 1절과 19절은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안트로포스 티스 엔 플루시오스)로 동일한 어구가 사용된다. 그래서 16장 전체를 '부자의 재물'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한다. 그런데 누가는 두 비유 사이에 14~18절을 보도하는데, 이 구절들은 누가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상당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누가의 편집의도가 난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4~15절(L 자료)은 1~13절의 비유를 듣고 비웃는 바리새인들을 토대로 겸손함에 대한 가르침이고, 16~18절(Q 자료 + 공관복음 자료)은 율법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비유의 서론으로 이해하면 난해함은 사라진다. 특히 18절, 결혼하고도 아내를 버림으로 간음죄를 범한 내용은, 율법에서 금지한 일반적인 내용이지만(레 18:6~19; 20:11~21), 이 율법을 어김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켜 세례 요한으로부터 비난받은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떠 올리면(-헤롯 안피파스는 '이복형'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버렸고, 마찬가지로 헤로디아도 헤롯과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버렸다. 참고, 막 6:14~29;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109~115, 136), 누가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곧 19~31절의 비유를 이들과 연관 지어 이해하라는 것이다.

셋째, 등장인물 '부자'에 대한 이해이다. 누가는 그 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자색 옷'(포르퓌란)을 입은 사람이다. 여기서 '입다'(엔디두스코)라는 동사가 지속적인 미완료 시제에 중간태가 사용된 것을 보면, 그는 자색 옷을 날마다 입고 즐거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그 부자가 돈이 많기에 비싼 '자색 옷'을 사 입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가 옷의 색깔로 신분 계층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부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사서 입을 수 없는 옷이 '자색 옷'이다. 이 자색 옷은 왕족들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러므로 네로는 극장에서 자색 옷을 입고 있는 부인들을 보면 관리를 시켜 끌고 나가서 옷뿐만 아니라 재산까지 몰수했다(수에토니우스, De vita Caesarum, 네로 황제 편). 결국 유대 사회에서 이 자색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은 '헤롯 가문'의 사람들뿐이다. 이러한 점은 예수님의 증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언급하시면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눅 7:25; 마 11:8)라고 말씀하셨다. 더불어서 당시 갈릴리에서 자색 옷을 입은 제일 부자는 헤롯 안티파스로, 그는 연간 200달란트의 세금을 거둬들였다. 예수님께서 19~31절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당시 청중들은 이 비유에 등장하는 '자색 옷'을 입은 부자가 누구인 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마치 '백악관'을 언급하면, 누구인 줄 쉽게 추측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21a절)에 대한 이해이다. 혹자는 유대인들은 개를 혐오하기에, 개의 이런 행동은 무력한 나사로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한다. 반면 혹자는 개들이 사람을 핥는 것은 애정의 표시이며, 고대인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아픈 상처 부위를 치료했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우리말 성경은 21b절의 문장에서 '그러나'를 뜻하는 접속사 '알라'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사로의 고난을 극대화 시켰다. 하지만 21절 문장을 접속사 '알라'를 살려 번역하면,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려 하였다. 그러나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가 된다. 부자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지만, 그러나 개들은 그런 나사로의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다섯째, 부자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의 품에 가지 못하고 음부에 간 이유이다. 일반적인 해석처럼 가진 돈과 재물을 나사로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지 않고 자신의 탐닉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이런 해석도 어느 정도는 타당함), 하나님이 '자색 옷'을 입도록 부여한 통치 권력을 백성들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착취함으로써 자신은 좋은 것을 갖고, 의로운 자(-세례 요한 포함)를 억압하며 또한 백성들에게는 고난을 준 것에 대한(25절)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은 악한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눅 1:52).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율법의 말씀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29, 31절). 이점을 강조하고자 아브라함은 나사로를 살려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는 부자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모든 권력은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강조하신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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