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그리고 '미리 내'

'미리내' 그리고 '미리 내'

[ 독자투고 ]

이신규 목사
2021년 09월 29일(수) 17:31
'미리내'란 제주도 방언중 하나이다. 방언을 풀이하자면 은하수라는 뜻인데, 용이 사는 시내나 강을 의미한다. 은하수를 용이 사는 개울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낸 제주방언 '미리내'는 아름답고 멋진 표현이다.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은 예수쟁이들에게 죽음의 강을 건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례 찬송가를 부를 때 그 가사가 포함되었을 뿐으로 실상은 요단강을 건너 더 좋은 곳을 향한 희망을 담은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속초나 홍천군에는 미리내라는 지명이 있다. 미리내라는 이름의 관광지도 있지만, 은하수와는 관계가 없다. 내가 사는 양평군에서 그곳을 만날 수 있다. 단지 한자로 표현하자면 미리내는 아름다운 마을의 개천(美里川)이라고 볼 수 있다.

미리내를 용의 개천으로 보거나, 하얀 별들의 물결로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그 은하수 너머 있는 세상을 하늘나라 라고 한다면 굳이 '요단강 건너 가 만나리'가 아니라 '미리내 건너가 살과저(?, 확인필요)'로 고쳐 생각하고 노래해도 좋을 것 같다.

미리내를 '미리 내'(先拂)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자주 가는 순두부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함께 점심을 잘 마친 후 계산대 앞에 갔을 때 주인에게서 황당한 말을 들었다. 그의 하는 말인즉슨, 옆에서 식사 하시던 분이 먼저 일어나 나가면서 우리 두 사람 몫을 모두 계산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그 분이 무엇하시는 분인지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가까운 모 회사에 다니는 분인 것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갔지만 아직도 그 분이 누구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비록 만나보지는 못하였지만 하여간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 내가 내야 치러야 할 값을 내 대신 앞서 미리 지불했을 때 그 당혹감이나 고마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그 즐거움은 며칠동안 계속된다. 카페나 식당 혹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이 나를 위하여 혹은 대신하여 그 값을 지불해 주었다고 하면 그 고마움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굴까? 누구신가? 왜 무엇 때문에 값을 지불했을까? 그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이을 터이다.

은퇴를 하고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은퇴를 하고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의 소식을 듣게 된다. 고령화 시대를 너머 초고령시대에 이르러서인지 별세 소식을 듣는 것도 뜸한 편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이름을 대면 알만한 고명한 분 몇 분의 장례를 집례한 일이 있었다. 그 선배님의 발인예배를 집례한 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아직 코로나19 이전의 일이므로 참가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을 시기인데도 참가한 조문객이라고는 가족 외에 별로 없었다. 여러 해 기관에서 사역을 해 온 목회자의 마지막 고별의 시간인데 얼마나 딱한 일인가?

장례비용에 대한 부담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국 은퇴 목사회원 2600여 명 중 총회 연금에 가입된 회원이 50%도 이르지 못한다. 목회자의 임종은 은퇴 이후에 맞이하는 일인지라 잊혀진 한 사람으로 지나가 버릴 일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 교단 혹은 내가 시무하였던 소속 노회 은퇴목사들만이라도 누군가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될 때, 거창하고 자랑스러운 천국환송예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은 금액이지만 부조금을 '미리 내'는 일에 참여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노회에 속한 은퇴 회원이 4~50명이라면 1만원의 부조금을 '미리 내'보내 올 때, 4~50만원에 불과 하겠지만, 노회적인 '미리 내'운동이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만일 범 교단적인 참여로 2000 명 은퇴목사 회원들만이라도 '미리 내'에 참여한다면 '미리 내 운동'은 가슴 따듯한 감동으로 다가 올 것이다. 그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필자는 본 교단 총회연금재단이 연금과 관계없이 이 '미리 내'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해 주기를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다. 전국 69개 노회 사회봉사부도 은퇴한 목사들의 넉두리로 흘리지 말고 진지하게 논의 해 주기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지금 현직에 계신 여러분도 얼마 있지 않으면 분명하게 은퇴하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요단강을 건너든 미리내를 건너든 죽음의 강을 틀림없이 만나게 되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직에 계실 때 이 일에 관하여 미리 논의 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간곡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이신규 목사 / 전국은퇴목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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