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어야

철이 들어야

[ 가정예배 ] 2024년 2월 9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선규 목사
2024년 02월 09일(금) 00:10

이선규 목사

▶본문 : 요나 3장 1~10절

▶찬송 : 214장



요나는 흡사 철없는 자식처럼 보인다. 생떼를 부리고 칭얼거리다가 급기야는 반기를 든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마치 종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수도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던 원수 국가다. 그런 국가를 하나님이 멸망시키겠다 한다고 하는데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미를 준다고 한다. 더구나 요나 보고 직접 가서 그 소식을 전하라고 하다니. 여기에 요나의 우려가 있다. 만약에 그들이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개과천선이라도 한다면 그래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다면(욘4:1) 그것이야말로 요나의 입장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요나의 우려가 현실이 된다. 요나의 경고가 삽시간 온 성에 퍼진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 백성들이 입에 물도 대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시는데 요나의 대응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죽여 달라고 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부모의 가슴에 못 박는 말 중에 하나가 부모 앞에서 죽겠다는 소리다. 철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것이 아니다. 요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갔을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요나는 '차별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니느웨를 비롯한 이방인을 똑같이 보시는데 요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는 요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유대인 전체가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 유대인은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차별을 했다는 것이다. 율법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선을 그었다.

이렇게 선을 긋는 차별은 우상의 역사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오늘날도 그렇다. 우리는 무엇으로 선을 긋는가. 지난주 한 외신 보도가 우리들을 우울하게 했다. 서구를 비롯한 선진국가들 중에서 유독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소득'으로 꼽았다는 기사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들은 '가족애' 혹은 '일에 대한 성취감'을 선택했는데, 우리는 소득으로 선을 긋는다. 또 우리는 학벌이나 지역, 진영 등으로 선을 긋는다. 너무 선을 많이 긋다 보니 자라나는 세대들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라고 한다. 청년들의 자살률 또한 최고치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 철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는 시기를 놓친다. 하나님의 믿는 백성들은 언제 철이 드는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을 넘어 '나'와 '너'를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전에는 선을 긋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 때에 비로소 들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들을 똑 같이 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선규 목사/황항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