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표적(요 2:1-12)<하>

가나의 표적(요 2:1-12)<하>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4

김형동 교수
2019년 07월 12일(금) 00:00
본문(요 2:1~12)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예수와 어머니의 대화이다. 포도주가 없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예수는 퉁명한 말을 건낸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것은 어머니가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음과 심지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는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여자'라는 호칭 자체는 무례한 것도 존경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표현은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그러나 거리감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4:21; 20:13, 15). 이것은 예수의 행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지 인간의 요청이나 주도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가 그의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다는 점이다(2:4, 19:26). 자신의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매우 부자연스럽고 놀랄만한 것으로 그 예를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여자'라는 표현은 요한의 신학적 특징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목할 점은 예수가 그의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고 있는 두 곳(2:4; 19:16)에서 '때'라는 어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있어서 두 본문은 '여자'와 '때'를 언급하는 요 16:21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리라." 그렇다면 십자가 아래에서의 슬픈 그 '때'는 구원의 기쁨의 때를 가져오는 여자의 산고를 나타낸다. 예수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가 됨으로서 상징적으로 산고 후에 기쁨으로 새 백성을 탄생시키는 시온을 기억나게 한다(사 49:20~22, 54:1, 66:7~11).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어머니는 새로운 하와(여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초대교회 때부터 마리아는 교회와 새로운 이브(New Eve)의 상징이었다(Justin Trypho c 5, PG 6:712, Irenaeus Adv.Haer III 22:4, PG 7:959). 창 3:15은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과의 투쟁을 예언한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때'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는 때이다(요 12:31). 이로써 창세기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러한 요한의 상징성은 요한문서에 속하는 요한계시록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약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이 여자로 묘사되고 있듯이(사 26:17~18, 66:7), 계시록에서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여자는 사탄으로 상징되는 용의 면전에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 아이를 낳는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5). 이 아이가 하나님과 그 보좌 앞으로 올라간 후, 용의 분노는 여자의 남은 후손을 향하고 있다(계 12:17). 여자의 남은 후손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자들로서(계 12:17),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자요, 또한 예수의 사랑을 받을 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곧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이다(요 14:21~23).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언어 표현인 '여자'는 어머니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적용된다. 그리스도교 전승 내에서 여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장례와 빈무덤의 전승의 첫 증인들이었다(공관복음). 요한은 예수를 증거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반복적으로 여자 호칭을 사용함으로써(4:28, 39, 42), '여자'라는 호칭에 상징성을 불어 넣는다. 예수와 여자의 대화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4:14)에 관한 것으로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을 기억나게 만든다. 이처럼 여자 호칭은 물이 포도주가 되고, 물이 생명수가 되는 변화와 출생의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막달라 마리아 역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요한은 '사흘'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이미지를 예수의 몸의 변화인 부활과 연결시킨다. 어머니 마리아 역시 증인의 역할로 그려진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오히려 시험한다(요 7:3ff). 이 때 어머니 마리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그의 자식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증인 공동체를 상징하는 인물들과 함께 있다. 어머니 마리아는 비로소 19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요한복음에서 제자, 곧 증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여자'가 함의하는 바는 사랑이다. 어머니 마리아는 분명히 아들을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이요 아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예수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믿음 있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로 예수로부터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예수는 그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셨고(참조, 요 13:23~26), 그는 예수를 믿고, 이해한 자로 요한공동체에게 예수의 계시를 해석한 자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를 사랑한, 예수 죽음을 목격한 두 증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하나님의 가족)이 탄생했다. 그들 모두는 사랑 안에서 하나로 묶여져 있다.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고, 믿음이 생겼고, 마침내 새로운 관계가 생겨났다. 죽음이라는 슬픔이 사랑 안에서 새로운 가정(즉, 사랑의 공동체)의 탄생이라는 기쁨으로 대치되었다. 사랑 안에서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 인류 구원의 대서사시가 완성된다.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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