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삼일운동

전염병과 삼일운동

[ 독자투고 ]

오정현 목사
2021년 10월 23일(토) 08:57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6회기 총회의 개회예배 설교에서 류영모 총회장은 3.1운동을 스페인 독감과 연관시켰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과 1919년에 창궐하여 최대 1억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20세기 최악의 감염병'이라 일컬어지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일제강점기 경무총감부의 <경무휘보>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은 시베리아를 거쳐 남만주로 이어지는 철도를 타고 한반도 북부로 유입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1918년 봄에 한반도 땅에 유입되어 1차 대유행을 일으켰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변종이 생겨 1918년 9월에는 2차 대유행이 일어났다. 이때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당시 인구의 44%에 해당하는 755만 6693명이 감염되어 14만 527명이 사망했고, 인천에서는 하루에 2000명씩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오년 독감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이 전염병의 위협이 엄청나서 자동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이 때 관공서의 업무가 정지됐고 회사도 휴업했으며 학교도 휴교했고, 그리고 교회도 문 닫았다. 과연 이런 일이 있었을까? 유관순이 3.1운동을 주도한 곳은 아우내 장터인데 천안에 있다. 그런데 유관순은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의 학생으로 3월이면 봄방학도 끝냈고 개학을 했을 때이다. 학교 다녀야 하는 학생이 학교가 있는 서울을 떠나 천안에 내려가 있으면 되겠는가? 그러나 학교가 전염병으로 휴교를 하는 바람에 유관순은 3월 13일 천안으로 귀향했고, 그래서 4월 1일 아우네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18독감과 조선총독부의 방역정책>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전염병에 대처하지 못하고 방역에 실패하여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일제는 강력한 헌병경찰제도로써 무단정치를 감행하여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어갔다. 특히 경무총감부의 위생과가 앞장서서 청결사업의 실시와 교통수단의 검열 외에 검병호구조사도 실시하였는데, 이로써 헌병경찰들은 방역을 앞세우면서 가택 수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체포 구금 태형까지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염병의 위험을 앞세우면서 집회도 금지시켰다. 일제는 이렇게 방역을 앞세우면서 강력한 무단정치를 실시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한국인 14만 527명이 죽어나가는 동안 일본인은 1297명만 사망했다. 이런 차별적인 결과를 접하면서 일본에 대해 반발하게 되어 독립을 외치는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와 맞물려 스페인 독감의 3차 대유행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전염성이 높아지니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을 빌미로 일제는 더 강력하게 총칼로 집회를 해산시키면서 막았고, 그래서 3.1운동에 엄청난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태극기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을 뿐인데, 왜 저토록 무자비하게 총칼로 사람을 죽이고 교회에 가두어놓고 불태워서 죽인 것일까? 이때 일제가 내세운 이유는 전염병이었다. 모여서 집회를 하고 시위를 했으므로 전염병에 노출되었다는 것이고, 이들이 돌아다니면 전염병이 퍼지게 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불 태워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방역을 강력하게 앞세우면, 이토록 무자비한 폭력 정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판에 누가 독립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은 더 이상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염병으로 인해 집회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모이면 스페인 독감에 걸리는데, 그러면 죽게 되는데, 어떻게 모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일제는 전염병 방역을 내세우면서 총칼로써 강압적으로 집회를 해산시키고 있다. 집회에 나갔다가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죽기 전에 일제의 총칼에 죽게 생겼다. 그럼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집회로 모였다. 일제의 총칼에 맞아 죽더라도 모여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지구상에 있었던 많은 전염병에는 패턴이 있다. 대략 2년 정도 창궐했고, 3번의 대유행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변종이 있어서 다소 연장되기도 했으나, 바이러스를 막는 방법은 한 가지인데 인구의 60%가 면역력을 갖는 것이다. 면역력을 갖는 방법은 직접 감염과 백신 투여, 두 가지다. 스페인 독감은 치료제도 없었고 백신도 없었다. 그래서 직접 감염을 통해 세계 인구의 60%가 감염되고서 세계적인 대유행을 끝냈는데, 대략 2년 정도 걸렸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코로나의 막바지에 와 있다. 10월말이면 백신 2차 접종이 70%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이제는 모여야 한다. 11월부터는 '위드 코로나'다. 하지만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여야 한다. 10%, 20% 하면서 눈치를 보고 주저주저 해서는 안 된다. 위드 코로나 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위드 처치'해야 한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서 구원 받는 사람이 교회에서 날마다 더하게 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오정현 목사 (면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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