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영화의 면류관

백발, 영화의 면류관

[ 현장칼럼 ]

이은주 박사
2022년 06월 17일(금) 00:10
이은주 박사
호국보훈의 달, 유월이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예우를 다 해야 하는 달'이다. 또한 6월 15일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이다. 이 날은 노인 인권을 보호하고,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노인복지법에 따라 제정한 법정 기념일이다. '2019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1만 6071건으로 전년(1만 5482건)보다 3.8% 증가했다. 노인을 학대하는 주가해자는 아들 31.2%, 배우자 30.3%, 딸 7.6%, 며느리 1.9%로 집계된다. 62%가 아들과 배우자로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노인 학대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은 있어선 안 될 날이다. 얼마나 노인 학대가 심하면 예방의 날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여든의 아버지를 중년의 아들이 욱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폭행한 일이 있었다. 폭행 이유는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꾸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노인보호 전문기관에서 이 가정을 상담한 결과 어르신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따라서 낮 동안 보호 및 인지재활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져 기억학교로 의뢰가 들어 왔었다. 치매에 대한 인식 부족과 치매 어르신에 대한 소통 부재가 아버지를 폭행하는 일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치매라는 병을 앓는 줄 몰라서 일어난 가슴 아픈 사례다. 실제 학대 피해 노인 중 치매진단 또는 치매가 의심되는 경우는 4명 중 1명꼴로, 전체 학대 사례 대비 26.3%를 차지한다.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게 하면 젊어 보일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치 '젊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결코 가능한 일도 아니고 억지스러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도대체 멈출 줄을 모르고 있다. 겉으로 어려 보이는'동안(童顔)'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격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동심(童心)'을 갖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동안' 만을 추구하니까 노인의 얼굴은 무조건 추해 보이고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적어도 나도 늙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느끼게 되면, 노인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생길 것이다. 노인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학대 받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작가, 웅변가였던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노년은 투철하고 원숙하며, 고요하여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말했다. 즉,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노년'을 역설하고 있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닥칠 미래다. 꽃피는 봄이 오는가 하면, 어느새 무성한 여름이 오고, 오색찬란한 단풍이 수놓는가 하면, 어느새 눈 내리는 겨울이 다가옴을 누구나 안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길은 누구에게나 처음 가는 낯선 길이다. 노화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길이다.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 한가닥 한가닥 '흰머리'로 변화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백발(白髮)을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장수(長壽)와 인생의 연륜으로 지혜가 많은 자를 일컫기도 한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잠16:31)' 으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대상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을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노인들이 맞는 오늘이 즐거울 수 있도록 노인을 보는 우리 모두의 시각을 바꾸어야겠다. 지금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이 '노인 공경의 날'이 되도록 힘을 모아가야 할 때다.



이은주 박사 / 삼덕기억학교 원장·기억학교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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