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키우는 아이들, 교회가 키우는 아이들

마을이 키우는 아이들, 교회가 키우는 아이들

[ 아름다운세상 ] 구좌제일교회의 마을교육공동체 이야기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9월 05일(월) 16:22


황호민 목사와 박미란 사모.

우리가 사는 구좌는 정말 정말 정말 멋져 당근!
에메랄드 빛 바다는 정말 정말 정말 예뻐 당근!
알록달록 사다리꼴 지붕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근사해 당근!
엄마의 숨결같은 바람은 정말 정말 포근해 당근!당근!당근!당
봄이면 밭담 사이로 유채꽃 향기 가득 당근!
겨울이면 초록 물결 사이로 당근당근 가득해 당근!
밭 담 너머엔 당근삼춘 저 바당엔 해녀삼춘
올레길 따라 걷는 발걸음 룰루랄라 신나네 당근!당근!당근!당근!

-바다랑 삼춘이랑 룰루랄라 노래집 수록곡 '구좌당근송'




【 제주=최은숙 기자】 제주 구좌읍. '이 동네' 아이들은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대단하다.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래도 만들고, 지역특산물인 '당근'을 소재로 책도 펴낸다. 마을풍경을 그리고 '마을홍보'에도 나서는 이 아이들, 이 아이들의 마을공동체가 궁금하다.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와 지역사회가 '같이'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한 명의 아이를 건강한 사회 구성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 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며,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 한 일'에 교회가 주축이 되어 학교와 지역사회가 '같이'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교육과 연계해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마을교육공동체'를, 그것도 '아주 잘' 펼치고 있다.

제주 동쪽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의 평대리. '이 동네' 구좌제일교회(황호민 목사 시무)는 '소문난'교회다. 지역의 아이들을 '키우는'교회, '내 아이를 잘 길러주는 교회'로 말이다.

황호민 목사 부부는 교회 앞 공터에서 만난 조손 가정의 남매를 교회에 초청해 돌보다가, 돌봄이 필요한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열고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했다. 2004년 지역아동센터 법제화에 따라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를 개소하면서 가정과 공교육이 담당하지 못하는 여러 역할과 기능을 하며 본격적인 구좌지역의 마을교육공동체 역할을 시작했다.

교회는 함께 배우고, 채우고, 누리는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해 '소통되는 마을(Communicate)' '타인을 배려하는 마을(Other)' '새로운 문화에 열린마을(Open)' '배움이 있는 마을(Learn)'을 표방한 마을's COOL(마을학교)을 시작했다.


#전통 전도 방식 냉랭 ... 부캐로 사역 확대

20여 년 전 30대 초반의 '외지 사람'인 젊은 목회자 부부는 지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거점 전도를 시작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유괴범으로 몰려 쫓겨났어요. 다시 또 아이들 앞에 나타나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도 받았죠."

'전통적인 전도 방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복음의 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주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 방법은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였다.12개 초중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활동하며 전 교생을 다 만났다. 성교육·학교폭력 예방 교육 자격증을 취득해 더 많이 시간을 학생들에게 할애하고 센터도 소개했다. 외지인으로는 처음 초등학교 어머니회장도 맡았다. 공부방선생님, 사회복지사, 지역아동센터 센터장, 마을교육공동체별밭 대표, 구좌읍청소년지도위원, 구좌읍주민자치위원, 구좌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무조건' 관계맺기에 나섰다.

"아이들이 교회와 센터에 관심을 가져도,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유괴범'이라서, '이단, 사이비'라서 안된다고 했지만 상담교사이고 센터장인 여러 부캐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우리 아이들 예쁘게 키워줘서 너무 고맙다, 아이들이 잘 커서 마을이 환해졌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너무 감사하죠."


#마을에서 크는 아이들

마을학교로 '이 동네' 아이들은 마을에서 놀고 배우고 꿈꾸며 성장한다. 마을은 학교가 되고 지역의 어른은 선생이 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아이들은 마을을 걸으며 바다냄새 하늘냄새 흙냄새 나무냄새를 맡는다. 마을 삼춘(제주에서는 성별을 불문하고 지역 어른들을 삼춘이라고 부른다)과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동네여행'을 통해 마을이야기 바다이야기 오름이야기 농사이야기를 듣는다. 마을 안길, 퐁낭과 돌담사이 우영팟, 고즈넉한 돌담집,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밭담, 에메랄드 바다와 하늘을 눈에 담아 마을 풍경을 그려 전시회도 열었다. 마을풍경을 그린 그림은 마을달력으로 엽서북으로 페브릭포스터 굿즈로 제작됐다.

아이들은 삼춘들에게 들은 농사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당근을 소재로 한 그림책 '당근이지'도 펴냈다. 그림책에 담긴 그림으로 전시회도 열고 당근 굿즈도 제작해 판매했다. 삼촌들의 이야기를 담아 '삼촌고라줍써'(삼촌 말해 주세요)'로 엮었고 소멸된 위기에 있는 제주어를배우고 우쿨렐레로 '빙떡, 웃당보민, 고치글라, 제미, 거북손' 등 제주어 노래도 부르다가, 우리들의 노래를 담은 '바다랑 삼춘이랑 룰루랄라 노래집'도 냈다.

주민들은 그림책을 보고 "누구보다도 기쁜 구좌 농부"라고 행복해했고, '삼춘고라줍써'는 "구좌 마을의 세대 간 공감을 이뤄냈다"고 기뻐했고, 마을풍경 그림을 보고서는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소박하게 빛나고 사랑스러운 구좌의 '해바라기 꽃'으로 주민들의 마음은 하나가 됐다. 주민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교회와 주민이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구좌 마을교육공동체를 넘어선 마을공동체로 도약

구좌의 청소년들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신문 만들고 동네홍보를 위한 사진도 제작했다. 구좌어린이합창단을 창단하고 정기연주회를 개최했고,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는 재능을 발견한 학생들이 음악대학으로 진학하며 꿈을 향해 도전했다.

청소년전용 공간 커뮤니티 '마을교육공동체 별밭'(대표:박미란)도 주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주민과 마을활동가들은 '마을의 교육공동체'를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고 마을교육공동체 별밭을 개소했다. 204㎡(약 62평) 규모의 (구)면사무소를 리모델링한 '별밭'은 박미란 센터장이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교회와 박 센터장을 향한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을커뮤니티 질그렁이거점센터를 세우기 위해서도 센터와 함께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았다.

황호민 목사 부부는 "경계를 넘어 이웃과 함께 하니 하나님 나라를 꽃피우는 교회가 됐다"고 했다. '교회'가 아닌 '아이들'을 섬기니 누룩처럼 지역사회에 스며가며 복음을 실천하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지역대표 교회가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20년 동안 '마을에서 크는 아이들'은 이제 '좋은 어른'으로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의 중심을 담당하고 있다. 그 일을 '마을학교'인 '마을교회'가 하고 있다. 이래서 제주의 바다 빛이 더 아름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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