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신 곳에서

부르신 곳에서

[ 목양칼럼 ]

김원주 목사
2024년 05월 01일(수) 08:00
언제부턴가 '어싱(earthing)'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주로 '맨발 걷기'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다 보니, 유명 관광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 '어싱'을 위한 길을 만들거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2~3분만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어싱'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단단한 땅이 아니라, 해변의 모래를 걷는 것이기에 무릎이나 발에 무리가 덜 가고, 모래와 바닷물을 함께 밟으며 걸으니 훨씬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아내도 한번 해 보더니 너무 좋다며, 늘 같이 하자고 한다.

필자가 바닷가에서 살며, 목회하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바닷가에 사니 참 좋겠다. 매일 해변을 거닐며 바다에 발도 담글 수도 있잖아." 그런 말을 들으면 "바다는 무슨, 지금까지 이곳에 살면서 바다에 발을 담근 것이 한 두 번 밖에 안되는데"라고 대답하곤 한다. 바닷가에 살지만, 바다는 심방할 때나 오며 가며 눈으로만 보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생각은 늘 있는데, 많은 것이 부족한 필자에게는 설교를 준비하고, 교회의 여러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가끔 어떤 사모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디 가든지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걸 누리며 사세요." 요즘은 필자도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하곤 한다. 필자가 사는 이곳은 좋은 바다가 있지만, 도시나 수도권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문화·예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 그렇다보니 학교 공공기관 공무원 등 순환 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기피지역이 되어, 발령이 나도 멀리 있는 도시에서 출퇴근 하거나 가능한 한 짧은 기간 근무를 하고 떠난다.

한번은 이곳보다 좀 더 시골 지역으로 발령받은 초등학교 초임 교사를 만났는데, 부임하고 며칠 동안 울었단다. 저녁 7시 밖에 안 되었는데 사방이 깜깜하고, 할 것도 없어 학교 관사에만 있어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교사에게 사모님과 똑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맞아요. 이곳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여요. 하지만 돌아보면 이곳에도 좋은 게 제법 많아요.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걸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이 선생님만 그럴까? 도시에서 살다가 목회지를 따라 시골로 온 목회자와 가족들, 평생 고향 교회를 지키며 언제나 변함없이 교회 안에서 헌신하고 있는 성도들, 이들 마음속에도 이런 답답함이나 외로움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신 곳이라는 사명감이 있기에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순종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 많은 것들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자꾸 내게 없고 여기 없는 걸 부러워한다. 다른 곳에 있으면 내가 더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지어 그걸 따라 부름의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곳이라면 거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성도들이 있고, 거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며, 거기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과 거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우리를 보내거나 살게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깨닫게 하시려고 적지 않은 시간을 이곳에 살게 하셨나 보다.

오늘도 아내가 나가면서 이야기 한다. "지금 바다 나가는데, 오늘 같이 맨발로 바닷가 걷지 않을래요?" '오늘은 한번 나가볼까?'

김원주 목사/후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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