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서 친밀함으로-요한복음의 개인주의

외로움에서 친밀함으로-요한복음의 개인주의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2

박영호 목사
2019년 12월 13일(금) 00:00
복음서를 읽으면서 그 뒤에 있는 공동체를 상정하는 독법은 현대 복음서연구에서 뚜렷한 흐름이다. 그 중에서도 요한공동체와 관련한 이론이 강력하다. 지난 호에서도 보았듯이 요한복음은 '우리'라는 주체를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요한서신 또한 그러하다 (요일 1:1). 일면 공동체의 자의식이 강하게 부각되는 이 복음서가 사실은 강한 개인주의적 색채를 보인다는 이론을 저명한 신약학자 리처드 보컴이 제시했다. 1세기의 지중해 세계는 현대인들이 상상하기 힘들만큼 강한 집단적 문화였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구원'은 개인의 희망이 아니라, 민족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었다. 요나가 선포한 니느웨의 멸망과 구원도 도시 전체의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는 말씀의 성취가 이스라엘이 소망하던 구원의 핵심이었다. 바울은 공동체의 구원을 교회 중심으로 이어간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복수) 구원을 이루라(빌 2:12)", "너희(복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권면은 교회 공동체가 한 몸으로 순종하고 이루어 가야할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3: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3:35)" "나를 사랑하는 자는(14:21), "진리에 속한 자는(18:37)" 등 개인과 예수가 맺는 관계를 강조하는 말씀이 수십 회 등장한다. 개인이 예수와 긴 대화를 가진다는 점 또한 요한복음의 특징이다. 나다나엘(1:47~51), 니고데모(3:1~21), 사마리아 여인(4:7~26). 마르다(11:20~27), 빌라도(18:33~19:12), 막달라 마리아(20:14~17), 베드로(21:15~22)와의 대화를 볼 수 있다. 이 대부분은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공관복음에도 듣는 자의 반응과 결단의 요구가 단수의 대상에게 주어지는 경우들이 있지만, 대체로 그 결과는 '새로운 가족'에 속하는 방향을 향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5)"는 말씀에서 볼 수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도 개인이 결단하여 돌아오지만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회복이 핵심이다. 공관복음에서는 기존 가족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아픔이 새 가족으로의 편입으로 대체되고 보상받는다는 생각이 강하다(마 19:29).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와의 일대일 관계가 결말이며, 이어지는 공동체와의 관계는 시야를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6:56)"라고 말씀하시는데, 성찬에서 공동체성을 철저히 강조하는 바울과는 사뭇 차이가 난다(고전 10:16~17).

강한 집단주의 사회에서 이런 개인주의의 출현은 놀라운 것이다. 이런 사고를 요청했던 상황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치유하신 기적이 나온다. 이 치유는 주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예수의 기적을 인정하는 쪽과 배척하는 쪽이 생겨났다. 유대인들이 그 부모를 불러 물어 보았으나, 놀랍게도 그 부모는 치유의 사실을 증언하기를 거부한다.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9:22)"고 저자는 해설한다. 그러나 맹인이었던 사람은 다르다. 예수가 죄인임을 시인하라고 압박하자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9:25)"라고 말하고 유대인들에 의해 쫓겨난다. 부모도 배신하고 외롭게 된 이 사람을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이어가신다 (9:35~38).

이 장면은 예수를 믿는 신앙 때문에 주위의 관계가 다 끊어진 개인, 그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판단한 신념을 집단의 압력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주체적 개인의 탄생을 알린다. 이런 주체는 근대적 개인의 요소인 '각성된 의식'과 표면적으로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리로 인해 자유(8장)"롭게 된 개인은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개인이다(15장).

궁극적으로 '서로 사랑하는(13:34)' 공동체에 희망을 건다는 면에서 바울이나 공관복음과 궤를 같이 하지만, 요한복음은 너무 빨리 이 집단을 저 집단으로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소외의 현실을 직면하고 충분히 외로울 시간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 외로움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목마른 사슴처럼 갈망하고 (시 42), 더욱 예수의 품으로 파고드는 친밀함의 영성으로 우리를 자라나게 하는 외로움이다. 유대인들로부터의 출교라는 가혹한 현실이 요한복음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다(예, 8장). 요한복음의 서두에서부터 '모세'와의 비교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저자는 모세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의 차별성을 "아버지 품 속에 있는(1:18)" 친밀성에 두고 있는 것이다.

박영호 목사/포항제일교회·전 한일장신대 신약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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