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보다 더 중요한 것

입시보다 더 중요한 것

[ 현장칼럼 ]

김정태 공동대표
2020년 11월 20일(금) 09:45
#갈 길을 몰라 헤맸던 90년 학번

1991년 여러 명의 대학생들이 분신했다. 군사정부세력과 민주화세력 일부가 야합한 3당 합당 이후 우리 사회는 심하게 요동을 쳤다. 소위 분신정국이라 불렸던 그때에 대학생들은 반정부 시위의 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그렇게 화창한 봄날 대학가의 연이은 분신 소식은 평범한 대학생활을 원했던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세상, 당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크기에 자신의 몸을 불태우기까지 해야 했을까?

그런데 시대의 아픔에 대한 이해는 그저 강의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갈등의 한가운데 깊숙이 들어가 자신의 온몸으로 통과해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한두 발짝 거리를 둔 관찰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그런 시대를 원망했다. '왜 하필 내가 대학생이 된 이때에 이런 혼란스러움이 찾아온 건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남자 동년배들은 군제대하고 대학 졸업 즈음 IMF사태를 맞았으니 불운한 세대였다.

#코로나 세대의 출현

전 세계에서 11월 9일 기준 현재 3100여 만 명이 확진되어 그중 사망자가 96만 명이다. 하루에만 3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의 기민한 반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으나 결국 다른 나라의 상황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상 지금의 거리두기 생활방식은 달라질 수 없다.

올해 학교에 첫발을 딛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대학 20학번 신입생들, 취준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이들은 코로나 세대로 불릴 것이다. 그들에게 각인될 학교와 사회는 이전 세대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하필 우리 시대에 이런 곤란한 일이 생긴 건가?' 하면서 사람을 또 세상을 불신하며 또 불안해하며 살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들 중에서도 특별히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특수학교 학생들을 더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그러지를 못했다.

#라면 소년의 죽음을 잊어선 안된다

지난 8월 이후 코로나 2차 확산이 일어나면서 학교는 다시 비대면 수업에 들어갔다. 낮에 부모가 없는 집에서 어린 두 형제가 직접 끼니를 해결하려고 라면을 끓이다 불을 냈고, 중상을 입어 치료를 받던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이 끝내 한 달여 만에 숨졌다.

10월 국정감사에서 강득구 국회의원은, "꽃도 피지 못한 8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피해 학생들에게 사고가 났던 때 정상적으로 등교했다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라며 이 비극에서 국가의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물론이다. 지난 3월 코로나 1차 확산 때도 등교수업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고3 학생들의 대학입시였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기준은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 어린 형제들과 같은 아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 낮에 어른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 아이들이 제일 먼저 등교하게 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입시가 더 중요했다. 그 결정이 이 사달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너무나도 그 형제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이제는 우리 교육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건강한 성장보다 더 앞서는 것이 학교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김정태 공동대표/좋은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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