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모드 전환

협동모드 전환

[ 현장칼럼 ]

최대석 목사
2021년 01월 08일(금) 11:46
협동조합의 정신 중의 하나는 협동이다. 협동의 첫 단계는 회의라고 할 수 있다. 회의를 통해 과제를 결정하고, 그 해결방법을 구할 뿐만 아니라 역할까지 분담하기 때문이다. 회의는 과제를 민주적으로 그리고 생산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온생명생협이 출범하고 매달 한 번 이사회가 열렸는데 초창기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참석자가 줄었다. 나중에는 거의 참석자가 고정되어 단출하게 회의를 하게 됐다.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자 당시 상임이사가 "목사님은 왜 그렇게 열심히 참석하세요?"라고 당혹하게 하는 질문을 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특별하게 비치는 것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저는 제가 속한 모임의 회의는 가급적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하고 말았다.

교계의 회의는 유독 위임이 많다. 즉 빠지는 이들이 많다. 회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위임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위임은 편법이고 직무유기이기도 하다.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내놓아야 결정에 도움이 되는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임자들이 많으면 의견교환이 활발하지 못해 맥빠진 회의가 되고 만다. 그럴 때마다 위임자들이 정말 개인 일정이 바빠서 그랬을까 생각해 본다. 일정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는데 아마도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만약 본인이 사회를 보는 위치라도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만약 너무 바빠서 자주 빠져야 할 상황이라면, 이름만 걸어 놓기보다는 차라리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회의라도 원활하게 진행되게 해야 할 것이다.

총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총회를 개회한 이튿날부터는 회의 장소가 썰렁하다. 분명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터 그렇게 자리를 비울 거라면, 왜 그렇게 총대로 가려고 애들을 썼는지 궁금하다.

회의에 꼬박 참석한 덕(?)에 모두 맡기 부담스러워하는 이사장직까지 맡게 됐지만, 회의를 진행 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협동을 모토로 하는 협동조합 회의조차도 회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때가 많으니 이게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회의가 속에서 솟구쳐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시는 분들 때문에 간신히 힘을 얻는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명분 만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 서로 지혜를 모으고, 최선을 다해도 일이 될까 말까 한데 회의조차 제대로 안 된다면,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자고로 협동이 절실한 시대이다. 지휘관만 있고 따르는 병사가 없다면, 그 군대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병사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이들이 많아야 교회나 사회도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새해에 우리 모두 협동모드로 적극 전환해서 우리에게 닥친 만만치 않은 위기상황을 너끈히 이겨내기를 기대해 본다.

최대석 목사/일산소망교회·온생명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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