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봄을 기억하는 오늘

98년 봄을 기억하는 오늘

[ 현장칼럼 ]

하태화 부장
2021년 03월 18일(목) 07:49
하태화 부장
밥상공동체는 98년 외환위기 때 원주교에서 무료급식으로 시작한 사회복지법인이다. 당시 실직 노숙자와 영세 노인들이 줄을 이었다. 그분들의 생활을 살피던 중 연탄이 없어 춥게 지내는 가정이 발견되었고 후원자 한 분이 연탄 1000장을 후원해 주셨다. 이렇게 2002년 문을 연 연탄은행은 전국에 31개,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해외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 복지관은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 순수 민간 모금으로 건립하여 2013년 개관했다. 원주 원도심 지역에 위치해 있고 인근에는 골목길과 연탄 가구들이 밀집돼 있어 옛 정취가 느껴지는 친근한 마을이다.

원주는 작년 2월 말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사회복지 기관들은 2주 휴관에 들어갔다. 2주, 또 2주.... 한 달이 되고 또 한 달.... 이렇게 1년이 넘었다.

1일 270명 가량 이용하던 무료급식은 수급, 차상위 분들로 선별해서 120개 도시락으로 지원하고 있다. 원주 대표 마을 라디오방송국(BS청춘라디오방송국), 교육문화 강좌도 모두 멈췄다. 매일 400명 이상 어르신과 지역주민, 봉사자들이 드나들던 복지관은 조용해졌다. 소규모 모임만 이어가며 안부전화와 가정방문 등 세밀하게 살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작년 4월, 80세 어르신이 도시락을 받으러 오셨고 짧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여쭸다. 평소 워낙 밝고 에너지가 많으신 분이었는데 코로나 상황 장기화로 우울감이 높아지셨는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우셨다.

코로나 전 어르신의 일상을 8시쯤 집을 나와 노인일자리를 참여하시고 점심때 복지관에 들려 식사를 하셨다. 잠시 쉬면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노래교실 등 노인대학 프로그램을 수강하시고 3~4시경 귀가하신다. 가시는 길에 병원, 시장, 노인정 등을 들리셨다. 집에 들어가면 씻고 저녁 한 술 챙겨 먹고 TV보다 주무신다. 바쁜 일상을 보낸 덕에 잠도 잘 주무셨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노인일자리, 복지관, 노인정 모두 휴관이 되었다. 집에 혼자만 계시니 옛날 생각만 나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란다. 고된 삶을 살아내신 깊은 주물 위로 흘리신 눈물은 한동안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우리 직원들과 이 상황을 공유했다. 안부전화로는 한계가 있어 안부 영상을 만들고 콩나물 키트, 화분 키우기, 치매예방 학습지 등 다양한 비대면 활동을 모색했다. 우울과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소셜로봇 '효돌'도 보급했다. 최근에는 24시간 어르신 가정에 생활 데이트(온도, 습도, 조도, 이산화탄소 등)를 확인하고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예방하고자 SME20(보듬이) 설치를 진행 중이다. 비대면 상황에서 돌봄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사각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올 4월 7일이면 밥상공동체 창립 23주년을 맞는다. 코로나와 공존하는 불확실하고 막연한 지금 여기 (here & now)에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혼란스러운 중에서도 분명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기에 지속 가능한 사회복지 모델을 고민한다. 우리의 발자국이 모이면 '길이 되겠지'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1998년 봄, 하늘 같은 밥을 나누며 믿음의 씨앗을 뿌리신 분들의 섬김과 헌신을 기억한다.

하태화 부장 /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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