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경청하는 것이 곧 선교

정성스럽게 경청하는 것이 곧 선교

[ 현장칼럼 ]

홍윤경 소장
2021년 06월 04일(금) 10:28
홍윤경
어찌하다보니(라고 쓰지만 하나님의 이끌림이라고 믿고 있다) 노동조합 간부로 오랜 기간 살았다. 이런 내가 선교단체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하지만 '당사자 운동의 소중함', '나와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 두 가지를 기억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영등포산업선교회(산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산선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가장 고심했던 것은 '노동자들을 위해서 선교적 관점에서 과연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1년 넘게 장고하며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빈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왔다.

출근하자마자 노동자들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동자 품'을 기획했다. 오랜 노조활동과 투쟁 경험으로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묻어두었던 나는 강사님들을 찾아다니고, 참가자들이 마실 컵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정성스럽게 붙이면서 '품 1기'를 준비했다. 품1기 참가자들은 노동부도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지만 '문자해고'를 당한 후 1895일이라는 기나긴 투쟁을 막 끝낸 노동자들이었다.

대다수 여성이었던 그들은 투쟁기간 동안 94일 단식, CCTV철탑 고공농성, 포크레인 농성 등 안 해 본 것 없이 목숨 걸고 싸웠더랬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국회에서의 극적 합의로 복직을 약속받았지만 마음 속에 쌓인 건 풀리지 않았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하러 갔던 날, 의외로 선뜻 응하는 모습에서 '아, 정말 절실히 필요하구나' 확신했다. 그렇게 시작된 품 1기는 나를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간이었다. "내 감정을 드러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평상시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안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렸을 때부터 대인기피증이 있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이 프로그램 하면서 많이 극복된 듯 하다". 수료식 때, 위와 같은 소감을 들으면서 '이거다!' 싶었다.

노동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스스로가 마음 돌봄을 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 권리를 찾아가는 힘겨운 과정에서도 서로의 관계를 북돋우는 것, 그것이 다변화한 오늘날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교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그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필요성을 깊게 느껴 공부도 하고, 한 단체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니 네트워크를 만들어 힘을 합치고, 산선으로 5년, 쉼힐링센터와 네트워크(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로 판을 키워서 5년을 하면서 치유를 경험하고 표정이 달라지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내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갔다. 필자는 아무 계획 없이 시작하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노동자들을 위해 무료법률상담을 하는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심리치유 프로그램 논의차 담당자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들 업무의 특성과 고충, 소진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들으며 치유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할지 구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나오려는데 그분이 촉촉한 눈망울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울컥해지고 위안이 되네요." '그래,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공감 받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간 만났던 수많은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말하는 치유의 경험은 경청과 정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시금 산업선교의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포개는 것, 눈을 마주치고 깊이 들으며, 단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오늘도 그 과제를 생각하며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홍윤경 소장 /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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