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의 주치의 활동과 통합돌봄

마을에서의 주치의 활동과 통합돌봄

[ 현장칼럼 ]

임종한 교수
2021년 07월 16일(금) 09:20
임종한 교수
1990년 3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의학전문의 수련을 마친 후 찾아간 곳이 인천시 부평구 부개 일신동으로 인천시에도 가장 가난한 달동네였다. 당시 그곳은 워낙 가난한 동네여서 흔한 동네의원 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비로소 최근에 서울 외곽 순환도로가 건설되고 택지개발지구로 고시되는 등 신시가지로 개발되고 있으며 도·농 복합지역에서 도시화 개발지역으로 탈바꿈 되었다.

부개 1동은 부개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동으로 '이곳에서부터 부평 땅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접어드는 진입로에 위치하여 경인 도시철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주거지역이며 과거 자연부락 단위에서 출발하여 형성된 지역으로 낡은 주택이 밀집되어 있었다. 가정의학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마을 단위 주치의 활동을 꿈꾸었던 필자는 대학병원 가정의학과가 지역에서의 주치의제 시범사업을 추진하길 바랐지만,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종합병원 가정의학과는 지역에서 주치의제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학병원에서 나와 지역으로 들어갔다.

마침 기독청년의료인회에서는 선후배들이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여 비영리 지역의원을 설립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해주었다. 기독청년의료인 40여 명이 당시 6700만원, 현재로선 4~5억에 해당하는 큰 돈을 모아주었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관리사업에 기독청년의료인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마음을 모아준 결과였다.

1990년부터 1995년 지역사업을 기반으로 1996년 인천평화의료생협이 드디어 창립됐다. 가난한 부개일신동은 인생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거주하게되는 곳으로 남자는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노동능력이 상실된 이들이 모여살게 되었고, 여자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많았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의사가 이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의 도시 왕진 및 방문의료가 이곳 부개 일신동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농촌 도시 복합지역인 안성에선 94년 안성의료생협의 창립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주치의제가 국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시민들이 평소 잘 먹지 못하거나 주거환경이 열악해서 치료해도 잘 좋아지지 않는 경우에 질병 발생 및 악화의 원인을 파악하는데 방문의료가 큰 의미가 있었고, 주치의를 통해 체계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기독의료인에게 있어 의료보장성 강화, 의료의 공공성 강화 노력은 제1기, 제 2기로 나누어지는데, 제 1기에 해당되는 것이 장기려박사의 민간의료보험 도입인 '청십자운동'이다. 이 운동이 전국의료보험체계를 갖추는 1989년까지 이어졌고,이때 자발적인 해산 결의를 했다. 이때 조합원이 22만명이었다. 지금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 조합원의 2배에 해당된다. 의료사협은 무려 30년이 지나고서야 이 수준에 도달한다.

1989년 이후 기독청년의료인회에 의해 의료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됐는데, 같은 정신과 목표지향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두 운동은 연계점을 갖지 못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청십자운동이 의료협동조합운동으로 이어져 발전했더라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훨씬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결코 늦지 않은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시민들의 참여에 의한 의료민주화운동은 우리사회에서 정말 필요하다. 1990년 기독청년의료인회에서 시작된 의료협동조합이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마저도 보장하는 보건의료체계 구축으로 발전해 나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임종한 이사장 / 희년상생사회적경제네트워크·인하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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