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에서 우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 현장칼럼 ]

조경래 목사
2021년 07월 23일(금) 08:57
사회(社會)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한 사람 이상이 모여 소통하며 사는 시공간적 개념으로 인격과 인격이 만나 인간의 삶과 경제활동이 있는 곳이라 답할 수 있다. 현재 이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과 이 글을 쓴 이가 서로의 감정을 글과 느낌으로 나누는 것도 사회의 부분이다.

사회는 상식이 존재하며, '사람다움'(인간존중)의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인권이 존중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과 아무 관계가 없는 40대 성인아저씨가 거리에서 다투고 있으면 지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초등학생 1학년 곁으로 다가가 그 꼬마아이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것이 상식이며, 약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이 사람의 역할이며, 이것을 '사람다움'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인권과 인권의 다툼이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노인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가끔 치매로 인해 돌봄을 받는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에게 욕을 하거나, 밀치거나, 심지어 때릴 때도 있다. 그렇다고 요양보호사가 자기방어 차원에서 어르신을 밀치거나, 욕을 하거나, 때려서는 안된다. 인격과 인격이 부딪힐 때, 인권과 인권이 부딪힐 때, 일반상식과 법은 항상 약자편(사람다움)에 서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돌봄을 받을 권리가 요양보호사의 자기방어 권리보다 큰 것이 상식이며, 이것이 바로 보편적 가치인 '사람다움', '사회다움'(살만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또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살고 있다. 사람이 아닌데 사람의 권리를 가진 곳이 있는데 회사, 조합, 법인, 기업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사회적 약속으로 법적인 인격을 부여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종종 기업, 법인의 권리와 개인의 인권과 권리와 부딪히며, 때로는 시장경제의 '자본'과 보편적 가치인 '사람다움'과 부딪힐 때가 다수 있다(다소 극단적인 예 :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 평택항 고 이선호 씨 죽음, 한국서부발전소 고 김용균 씨 죽음). 이 때 법과 상식은 어떠할까?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상식이지만 '자본가치'를 우위에 두는 모습들을 접하면서, 자본주의 한계(친기업정책)와 그 폐단을 목격하게 된다. 산업현장의 원칙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절감과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사람이 주검으로 내몰리는 상황들에 대해 우리는 왜 반응하지 않을까?

이때 교회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교회가 이 시대의 사회적 도피처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사회적 도피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 시대의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실까? 교회가 이 시대를 향하여 시대정신을 논하기 이전에 최소한 교회가 나아갈 방향과 사람 중심, 인간애, 목회철학, 지역사회를 돌보려고 하는 마음들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사회정의, 사회적 가치, 사회적기업, 사회적 경제, 사회복지 등 주목받는 단어들에 모두 사회(社會)가 들어가 있다. 사회(社會)라는 단어의 중심에는 '사람 중심의 가치'가 내포돼 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 중심의 가치를 두고 있을까.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선포하고 있지는 않는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구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인데 불구하고, 이분법적으로 가르쳐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조경래 목사 / 안양시부흥종합사회복지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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