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어디에나 뜨는 달처럼

하나님 사랑, 어디에나 뜨는 달처럼

[ 현장칼럼 ]

남금란 목사
2021년 10월 15일(금) 08:15
지난 추석 명절, 시설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여느 가족들처럼 맛있는 상을 차려 아침을 먹고 선물과 새 옷도 나누었다.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아침상 앞에서 서로 감사의 말을 나누다 보니, 그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우리 마음에 종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이 분들 중에는 어려서 부모님 손에 자라지 못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분도 계셨는데, 그래도 교회를 집처럼 오가며 살아서 교회가 그 마음에 부모의 품을 대신해 주었다고 말했다. 한 아이를 키울 때 온 마을이 필요하고 그 울타리가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여전히 교회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세는 당시 영아학살로 인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지자 부득불 강물에 버려졌었다. 그러다가 파라오의 딸의 손에 들어가 유모인 친모의 젖을 먹고 자란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극단적인 불행 속에서도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신비한 기적 속에 창조적으로 피워낼 수 있음을 말해주는 사건이다. 믿음의 시각에서는 인간에게 궁극적인 비극이란 원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시각장애인이 눈먼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율법의 편견을 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위대한 선언 속에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인과'를 넘어서는 '사랑의 신비'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바로 이 질문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살아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기 자신이 곧 사랑'이며, 사랑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간이 자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과거가 어찌되었든 '지금 회심' 할 수 있고 '지금 여기에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이 과거의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에 달린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있고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이것이 전부다. 가난하고 가슴 아픈 우리들이 모인 쉼터 또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기적의 산실이 되곤 한다.

매일 이 분들을 만날 때 우선 제 자신이 두려움의 옷을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변화'에 나 자신을 '신성의 통로'로 내놓아야만 한다.

간밤에 비가 왔지만, 비개인 날씨는 천상의 바람과 맑은 공기, 푸른 하늘로 몸과 마음은 날아가는 듯하다. 이 바람은 마치 만나지 못한 그리운 모든 이들이 손잡고 흥겹게 춤추는 율동이 되어 우리의 살갗을 어루만진다. 밤에 구름 속에 가려진 보름달은 마치 곧 드러날 '큰 나에의 동경' 같고 그 동경은 우리 모두의 잡은 손 안에도 떠올랐다.

달빛은 가슴의 새벽빛을 쏟아내며 "항상 기뻐하라"며 우리를 재촉한다.

가난한 동네에도 부자 마을에도 차별 없이 비춰주는 둥근달이 서울 한 모퉁이 우리 얼굴도 비추어 준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 것처럼 말이다.



남금란 목사 / 전국여교역자복지재단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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