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정

하나님의 공정

[ 독자투고 ]

이현웅 목사
2022년 02월 14일(월) 11:14
이현웅 목사
지난 연말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세계 최고 전문가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kety)가 주도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WIL)는 '2022 세계불평등보고서'를 작성해서 발표하였다(2021. 12. 7). 이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많은 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현실을 조사하여 분석하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2021년 일인당 소득으로 볼 때, 상위 10%에 속한 사람들은 한 해 평균 15만3200유로(약 2억원)을 벌었고, 하위 50%에 속한 사람들은 평균 1만 600유로(약 1400만원)을 벌었다(1유로를 1300원으로 환산). 지난 일년 동안 우리나라 상위 10%의 사람들은 하위 50%의 사람들에 비해 약 14배 정도의 수입을 더 얻었다. 부동산이나 저축, 주식 등 자산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상위 10%의 일 인당 평균 자산은 105만1300유로(약 14억원)이고, 하위 50%의 평균 자산은 2만200유로(약 2700만원)이다. 여기는 무려 52배의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공정의 이슈

지금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는 '공정'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그리고 학계에서도 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 사회는 최근 공정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경험하였다. 하나는 2021년 인천국제공항에서 일어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었고, 또 하나는 2020년 코로나 상황에서 제기된 공공 의료 확충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하여 정규직 직원들은 더 치열한 경쟁과 시험을 통해서 합격한 우리와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의대생들과 의사들은 국가고시 거부와 파업을 벌이면서, 우리는 공부를 더 잘했고 열심히 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대(또는 의사)의 문을 쉽게 열어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맞는 이야기다. 더 열심히 한 사람이 더 많이 받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나은 대우를 받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상식과 기준으로 볼 때, 이것은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만의 공정

그러나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할 것이라 본다. 그들이 외치고 부르짖는 공정은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오늘의 공정을 외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공정을 주장하고 있는가? 지금 공정을 외치는 사람들은 더 배운 사람들이다. 지금 공정을 부르짖으며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가진 사람들이고, 사회적으로 더 높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들은 더 배웠고, 더 능력이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갖춘 것들이 많으므로, 자기들은 그만큼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는 것이 공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당한 처우와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 정말 공정이 필요한 약자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하루하루 살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공정이라는 말마저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공정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정마저도 사치인지 모른다. 특권층을 위한 공정, 그것은 그들만의 공정이다. 그것은 탐욕과 이기주의를 저변에 깔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하며 오만하게 외치는 또 하나의 사회적 폭력이요 차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 공정을 외치며 자기 몫을 더 챙기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브라만의 공정', '엘리트의 공정', '그들만의 공정'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정: 다섯 시 품꾼에게 주시는 은혜

하나님은 어떠실까? 마태복음 20장 1~16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품꾼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거기는 이른 아침부터 와서 초과 노동을 한 일꾼들, 아홉 시 정시에 일터에 출근한 일꾼들, 12시와 3시에 파트타임 시간제로 온 일꾼들, 시간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퇴근 시간이 다 된 오후 5시에야 겨우 와서 일한 일꾼들이 등장한다.

인력시장에는 오후 5시까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시장터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핀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찾아갔다. 포도원 주인이 "왜 온 종일 여기서 놀고만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고용 한파가 그때 거기도 있었던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일을 못 하면 당장 그날 저녁에 온 식구들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품꾼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아야 하므로 벌이가 없다면 그날은 굶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던 포도원 주인은 이들을 데려와 일을 시킨 후, 동일한 일당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다. 그러기에 그날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준 임금은 '하루 일당'이 아니라, 품꾼과 그 가족들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정이다. 하나님은 일찍 온 사람에게 덜 준 것이 아니라, 늦게 온 사람에게 더 주신 것이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먹고살아야 할 가족이 있었으며, 오늘 품삯을 못 받으면 그들은 당장 저녁을 굶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 되신 하나님은 일자리마저 구할 수 없어 장터에서 서성이고 있던 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시고,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심으로써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다. 그것은 먼저 된 자를 먼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 된 자를 먼저 되게 하는 것이다(마 20:16). 잘 사는 자를 더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자에게 더 주어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비록 오후 다섯 시의 낙오된 인생일지라도 그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가시고, 그를 껴안아 다시 일으켜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만나와 같은 것이어서, 많이 거두어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두어도 부족함이 없도록 한다. 먼저 된 자도 없고 나중 된 자도 없으며, 넘침도 없고 부족함도 없다. 모두가 함께 먹고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이 땅에 만드는 것이 한 데나리온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공정이다.

가장 큰 불공정은 '불평등'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와 지식과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녀들의 교육적 불평등까지 대물림되고 있는 이런 암울한 세상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공정'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 역시 세상을 따라 먼저 된 자의 편에 서고, 먼저 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이현웅 목사 / 전 한일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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