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제2, 제3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 현장칼럼 ]

김자경 사무국장
2022년 02월 25일(금) 00:10
제2, 제3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엄마가 셋인 아이가 있었다. 낳아 준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아기는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그들은 이혼을 했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살았다. 얼마 안 되어 아빠는 재혼했고, 아이는 세 번째 엄마인 새엄마가 생겼다. 새엄마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왔다. 거리를 헤매다 찜질방에서 자곤 했다.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찜질방에서 잘 수 있었냐고 묻자, 아이가 답했다. "밤 10시 전에만 들어가면 됐어요. 10시 넘으면 아무 어른 옆에 앉아 있으면 되고요. 그냥 가족인 줄 알아요." 그렇게 무관심한 어른들 사이를 아이는 유유히 걸어 다녔다. 돈이 필요했던 아이는 여러 번 절도를 했고 결국 본 시설에 입소했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어쨌으면 네가 비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가 말했다. "그들(아빠와 새엄마)이 저를 그 집에서 뺐어야 해요. 차라리 그룹홈 같은 데서 살았으면 모범생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누가 내가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다시 물었다. "아빠, 엄마의 이혼이나 새엄마 문제로 힘들 때 도움 받은 적 없니? 학교라든지…", "아니요. 학교에서는 아예 몰랐고, 아무도 도와준 적 없었어요." 아이 옆에는 도와 줄 어른도, 잘못을 일깨워 줄 어른도 없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제1의 안전망이다. 부모는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부모가 안전망이 아니라 위험지대인 아이들이 있다. 모 신문 기사에 기막힌 이야기가 실렸다. 청소년보호시설에서 거주하던 이십 대 딸이 주말을 맞아 집에 갔다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연이었다. 본 시설을 거쳐 간 아이들 중 비슷한 일을 당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엄마가 셋인 아이나, 친부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남보다 못한 존재이다.

제1의 안전망에 문제가 없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제2, 제3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정환경을 뒷받침해 줄 디딤돌이 있어야 한다. 학교, 복지관, 교회, 이웃 …. 곪은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줄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이 더 이상 어른들 사이를 유령처럼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이자 힘없는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끔찍한 유태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끔찍한 경험의 기억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다르게 반응'하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내 말이 얼마나 잔인한 지 잘 안다. 이는 마치 척박한 땅에 씨 하나 던져놓고 알아서 크라고 하는 말과 같다. 반응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유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유를 알고 힘을 기르기 위해 제2, 제3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김자경 사무국장 / 나사로청소년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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