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 아래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은총 아래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 현장칼럼 ]

이현아 목사
2022년 03월 04일(금) 00:10
"하나님의 은총 아래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서울 안산 기슭에 자리한 봉원교회(박용권 목사, 서대문구 소재)는 2015년 '올해의 녹색교회'로 선정되었다. 교회 예배당이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교인들이 자연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많기도 하지만 이 교회가 특별히 자연과 가까운 것은 지리적 이유만은 아니었다. 예배당과 닿아있는 산의 버려진 곳 일부를 교인들이 함께 개간하여 포도나무와 감나무를 심고, 딸기, 상추, 고추, 감자 등을 심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과일과 채소가 자라나고 있었다.

예배당 앞에는 모과나무, 블루베리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향나무, 대추나무 등이 자라고 있고, 교회 마당에는 도무지 도심 한가운데서는 볼 수 없을 법한 자그마한 논이 펼쳐져 있었다. 모내기 전에 물이 찰랑찰랑 차 있는 논, 뜨거운 햇살 아래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 누렇게 익어가는 알곡, 이윽고 밑둥 잘린 볏단을 품은 추수 끝난 논바닥의 검은 흙 등, 논은 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이들에게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알게 했다.

교회 마당은 담벼락이 없어서 누구나 드나들기 좋았다. 문턱이 없는 마당 한쪽 양지바른 곳에는 갈 곳 없는 고양이들이 고단한 숨을 고르며 단잠을 자고 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 이 은총의 공간은 교인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교회는 마을 사람들이 교제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카페, 새활용공방, 제로웨이스트샵, 도서관, 쉴 수 있는 벤치를 제공하고 있었다. 대학가 근처에 위치한 특징을 살려 지방에서 상경하여 혼자 사는 청년들에게 공간과 식사를 제공하며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교회 마당의 논에서 벼가 익어 추수할 때가 되면 교인들이 함께 모여 추수를 하고 탈곡을 하고 도정을 하여 인절미를 만들어 나누는 축제가 이어진다.

하나님의 은총에는 한계도 경계도 없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든 생명이 편안함과 감사, 풍요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교회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집은 사람뿐 아니라 온갖 동, 식물들도 깃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그 귀함을 인정받고 교류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목회자의 철학이다.

'녹색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적색은총'뿐 아니라, 창조세계와 자연 만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으로서의 '녹색은총'에 가까이 가려는 교회들이다. 그렇기에 녹색교회는 다양한 생명이 함께 숨쉬기를 꿈꾼다. 지난 2006년부터 선정된 전국 90여개의 녹색교회들은 각기 나름의 특성을 살려 하나님께서 세상에 내신 다양한 생명을 보듬고 있다. 농어촌의 교회들은 비록 조금 더 고되더라도 농약과 비료에 시달리지 않은 식물들을 길러내기 위해 애쓰고, 닭, 오리, 염소, 돼지, 소 등의 동물들이 좀 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배려한다.

도시의 교회들은 빌딩 숲에 갇혀 사는 도시인들이 자연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녹색 은총을 잊지 않도록 생태적 영성의 고양에 힘쓴다. 환경 주일을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생태적 관점에서 성경 읽기를 시도한다. 도시를 밝히는 불빛,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파괴되어가는 지구 생태계를 기억하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버려지는 폐기물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봄이다. 올봄에도 이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녹색은총을 드러내고 매개하려는 녹색교회들을 찾으러 길을 떠나게 될 것 같다. 겨울 추위를 지나고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산수유를 만나기라도 할 듯, 설레인다.



이현아 목사 /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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