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있어도 아름다운 인생

치매가 있어도 아름다운 인생

[ 현장칼럼 ]

이은주 박사
2022년 03월 18일(금) 00:10
한국 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4%가 넘는 고령사회다. 2025년에는 노인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치매의 유병률은 전체 노인의 약10.3%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노인 10명중 1명은 치매라는 말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85세 이상에서는 40% 정도의 치매 유병률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암보다 치매(43%)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는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으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본질적으로 상실되는 병이고, 주로 노인에게 나타난다. 한자로는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를 사용하여, '어리석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치매에 걸린 노인을 '노망났다', '망령났다' 또는 '노광(老狂)' 이라는 말로 사용해 왔다.

치매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개념이 있어서, 기억학교는 치매를 연상하는 '기억'과 어르신들의 경우 시대적 상황과 어려운 형편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서러움이 많아 '학교'를 합성해서 '기억학교'로 시설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기억학교는 대구광역시의 특화사업으로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경증치매 및 경도인지장애어르신을 대상으로 낮 동안 인지재활 및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이다. 2013년에 4개소로 시작하여, 2022년 현재 18개(신규 2개소 준비중)시설이 운영중이다.

개원 초기에는 '기억학교' 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대상자를 모집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직원들과 사업안내지를 들고 가가호호(家家戶戶) 다니며 홍보를 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경증치매이지만 정작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참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에 80대 초반의 한 어르신을 만났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불의의 사고로 50대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어르신은 자식의 죽음이 한이 되었다. 그날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면 물리치료실에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어떤 말을 해도 어르신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어르신, 많이 힘드시죠? 저도 어르신, 둘째를 먼저 보냈어요."라며, 함께 울었다. 어르신은 "어떻게? 이렇게 젊은 원장님에게 그런 일이…." 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어르신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힘을 내셨다.

어르신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한글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렇지만 기억학교의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특별히 학습과 관련된 인지재활프로그램을 좋아하셨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르신을 위해 아동용 학습지를 매월 구독하여 한글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쳐 드리고, 매일 숙제도 내 주었다. 어르신은 배우는 기쁨과 함께 학교에도 잘 적응하면서 깜빡 깜빡하던 치매증상이 호전 되고, 우울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예쁜 편지지에 비뚤비뚤 손 글씨로 "원장님, 선생님들 고맙습니다."로 시작하는 어르신의 정성이 가득 담긴 손 편지를 받는다. 이제 어르신은 "삼덕기억학교가 자신의 생명이고,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자주 말씀 하신다. 현재 어르신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오래 다닌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다.

기억학교 입구에는 "우리는 어르신을 사랑합니다. 어르신을 사랑과 정성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글을 붙여놓았다. 매일 드나 들 때마다 가슴 깊숙이 아로새기고 있다. 가족이 가장 돌보기 힘들어 하는 질병 1위가 치매이지만, 어르신들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시인 김광섭은 '병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병을 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한 부분으로서 생명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함을 날마다 되새기며, 기쁘게 사명(使命)으로 받든다.



이은주 박사 / 삼덕기억학교 원장·기억학교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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