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유형에 따른 체계적 지원 필요

시청각장애인 유형에 따른 체계적 지원 필요

[ 현장칼럼 ]

홍유미 센터장
2022년 04월 08일(금) 00:10
홍유미 센터장
"온점을 빼 주세요. 시·청각지원센터가 아니라, 시청각지원센터입니다."

'시청각장애'라고 하면 흔히들 시각장애인·청각장애인을 함께 지칭하는 준말인 '시·청각장애'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시·청각'이 아닌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원센터다. 이곳에서는 시각과 청각의 기능이 함께 손실된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에 대한 오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청각장애라고 하면 시각과 청각의 복합장애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장애다. 시각장애는 청각으로, 청각장애는 시각으로 세상과 소통하지만 시청각장애는 시각·청각 기능 둘 다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정보접근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의료적 측면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이러한 시청각장애인이 약 1만 명 정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잘 모르고 생소하다. 지원 체계에 대한 고민은 해당 장애유형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오늘은 시청각장애가 무엇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시청각장애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청각장애라 하더라도 장애유형과 발생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갖는다.

먼저, 장애유형에 따라 구분할 경우 맹기반 시청각장애인(맹농인)과 농기반 시청각장애인(농맹인)으로 나눌 수 있다. 맹농인은 맹인으로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난청이 생기는 경우다. 농맹인은 농인으로 태어나 질병, 혹은 유전적인 문제로 인해 점차 시력을 상실하는 경우다. 맹농인은 청력을 상실하더라도 평소 사용하던 점자나 음성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데, 농맹인의 경우 음성언어도 사용할 수 없는 데다가 대체 소통 수단으로 사용되는 촉수화가 기존 수어에 비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난점이 있다.

약시나 난청으로 인해 희미하게 볼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시청각장애인도 있다. 보통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만을 떠올리지만, 약시나 난청 역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에 시청각장애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시청각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헬렌켈러센터에도 암으로 시각과 청각 기능을 함께 상실한 분이 계신다. 이런 경우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흑 같은 세상이 버거워 심리적인 어려움까지 겪는 분들이 많다.

선천성 시청각장애인도 있다. 가장 어려운 케이스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이 없다. 영유아기 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학령기가 되면 농학교나 맹학교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시청각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렇게 시청각장애인은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한다. 다양한 유형만큼이나 소통 수단도 촉수화, 촉점자, 근접수어 등 다양하다. 유형과 발생 시기에 따라 지원 방법도 달라진다.

나 역시 헬렌켈러센터에서 일하며 시청각장애인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걸 알았다. 일을 할수록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함을 느낀다. 시청각장애인 지원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1967년에 이미 법안이 제정되어 시청각장애인 기관·단체 설립과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정부 정책이 규정되어 1991년 전국맹농인협회가 설립되었고 이를 통해 전문 통역 인력 양성과 당사자 욕구 기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에는 시청각장애인이 별도의 장애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고, 이에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 시청각장애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인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점자·촉수화 교육 등을 제공하고 점자정보단말기를 무상으로 대여·지급하여 소통할 수 있게 돕고, 자조모임 등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를 촉수화 강사, 동료상담사 등으로 양성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아동을 위한 1:1 촉감 교육도 국내 최초로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시청각장애인이 서로 돕고 연대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해 자립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홀로 캄캄한 어둠 속을 걷고 있을 시청각장애인들에게 헬렌켈러센터가 한줄기 빛이 되길 소망한다. 또한 현재 계류 중인 '헬렌켈러법'이 하루속히 제정돼, 어엿한 국민의 한 사람인 시청각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 민간의 도움 없이도 보장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홍유미 센터장/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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