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의 마음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 현장칼럼 ]

이은주 박사
2022년 04월 15일(금) 00:10
이은주 박사
의식주는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해결해야 될 첫 번째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매일 밤, 편안하게 내 한 몸 뉘일 곳 없는 삶은 참 고단할 수밖에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인간은 집이라는 따뜻하고도 안락한 장소를 구했던 것인데, 첫째로 육신의 따뜻함을, 둘째로 사랑의 따뜻함을 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집은 우리의 육체적 필요뿐만 아니라 정신적 필요까지 채워주는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기억학교 10층에서 사면을 둘러보노라면, 삭막한 빌딩보다 더 높게 우뚝 서 있는 공사용 크레인이 여러 개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 도심은 재개발로 인해 그야말로 '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쳐서 '대프리카'라고 일컫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대구의 삼복더위 속에, 지난해 여름 도심의 전봇대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골목, 골목을 누볐다. 한 어르신의 월세집을 구하기 위해서다.

어르신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 독거 생활자이며, 결혼하지 않았고, 젊은 시절 여성으로서 매우 힘든 곳에서 일하셨다. 한때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을 떠안으면서 과거 어르신의 소유였던 아파트에서 현재는 월세로 생활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이며, 7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뇨, 혈압, 경증 치매, 염분 조절 이상 등의 각종 질환을 앓고 있다. 3년 전 길을 배회하는 등의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행정복지센터 담당공무원의 의뢰로 기억학교를 이용하게 되었다.

처음 이용할 때만 해도 창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완강한 이용 거부로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잔뜩 화난 표정으로만 하루 종일 계셨다. 그러나 주기적인 상담과 설득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식사 제공 및 정서지원, 투약관리로 우울증과 치매도 좋아져서 현재는 건강한 생활을 잘 유지하고 계신다. 어르신이 거주하는 13평 아파트는 지어진지 50년 가까이 된 아파트로 곧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다.

이곳은 리모델링 한번 없이 처음 지어졌던 아파트 모습 그대로다. 현관은 나무문이고, 주방은 옛날 주택의 부엌과 닮아 있었다. 아파트 거실 층고보다 약 30cm 낮은 주방에는 싱크대 없이 찬장과 수도만 있었다. 또한 옛날 이발소에서 보았던 작고 하얀 사각 타일이 벽면과 바닥에 부착되어 있었고, 기름보일러를 사용했다. 방은 2칸으로 1칸은 몇 년을 쌓아 두었는지 모를 이불과 옷, 각종 짐들로 방문을 열기도 힘들었다. 화장실은 베란다 한편에 있었다.

어르신은 재개발로 이사를 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다. 혹여 월세를 구하지 못하면, 어르신은 도심 외곽 또는 양로원에 입주해야 했다. 그러나 어르신은 기억학교 근처로 이사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도심 중앙에 위치한 삼덕기억학교의 주변 월세는 50만 원 이상이고, 원룸이 주를 이루어, 어르신이 찾는 20만 원대의 월세는 도심 부동산 중개소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물권이라서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직접 찾을 수밖에 없었다.

20대 중반 이사한 지 일주일 된 전셋집에 불이 나서, 아침에 출근한 옷과 가방 외에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런 나로서는 집 없는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르신의 어려운 사정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며칠 만에 어렵게 월세집은 구했으나 5백만 원이나 되는 월세 보증금은 한 푼도 없었다. 직원들과 협력해서 어르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제안서로 작성하여 모금 지원기관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살던 집의 낡은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필요한 가구들은 중고사이트의 무료 나눔으로 구하여 이사를 해 드렸다.

낙후된 구도심이 재개발되면서 집값 상승으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고통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겠노라.' 다짐하며, 사회복지현장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 마음 변함없이 주님이 "병들고 약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던(마9:36)" 그 긍휼의 마음이 내 속에 더 많이 부어져서, 저들의 필요에 민감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기를 도심의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한다.



이은주 박사 / 삼덕기억학교 원장·기억학교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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