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비를 맞으며

[ 현장칼럼 ]

송기훈 목사
2022년 07월 01일(금) 00:10
송기훈 목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을 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평택항 컨테이너 오작동에 목숨을 잃은 노동자 이선호 님의 죽음,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한 노동자 김용균 님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알리는 커다란 사건이 되었다. 안전에 대한 비용을 절감하고 단가 낮은 노동으로 채운 노동현장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산업재해는 사망이 아니라 살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더 이상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추운 겨울 가슴 아픈 사고를 겪은 유족이 직접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나서야 겨우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이나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을 운영하면서 안전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이를 앞두고 한 노무법인 관계자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많은 상담 요청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상담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하였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던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해버린 십년 전의 비극이 떠올랐다. 지난 3월 21일 포항의 한 제강 사업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한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제강 사업장은 사망한 노동자를 제외하고도 최근 5년간 5명이 산재 사망사고를 당한 곳이었다. 미흡한 안전조치로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였음에도 1심 판결을 받은 4건의 사고는 모두 벌금형에 그쳤다. 노동자의 유족은 사과와 배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대신 본사 앞에 분향소를 차렸고 80여일이 지나고 나서야 회사의 형식적인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약속을 받았을 뿐이다.

"우는자와 함께 울라"는 성서의 말씀이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가슴 아파하는 공감의 차원을 넘어서 정의의 실현을 기반에 둔 그리스도의 사랑이 절실히 요청된다. 오는 8월 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를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는 주제로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린다. 그에 앞서 WCC 총회를 준비하는 한국동행모임은 '노동존중 세상을 향하여' 라는 주제로 지난 5월 25일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도회를 진행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및 에큐메니컬 단체가 공동으로 준비한 이 기도회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모아 내었다. 중간부터 내린 비로 인해 진행이 다소 어렵기도 했지만, 함께 비를 맞으며 슬픔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기도회는 세계 WCC 회원교회에 생중계로 전달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아픔을 겪는 노동자의 곁에 머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온전한 이 세계의 화해와 일치를 이끄시기를 소망한다.



송기훈 목사 / 영등포산업선교회 교육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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