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의 진정한 자립

시청각장애인의 진정한 자립

[ 현장칼럼 ]

홍유미 센터장
2022년 07월 08일(금) 00:10
홍유미 센터장
최근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 센터를 통해 지원받던 시청각장애인 손창환 씨가 직원으로 채용된 것이다. 그는 첫 월급을 받으면 아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또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시청각장애인 복지가 좋은 선진국들을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기대감에 부푼 손 씨를 보면서 더 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이 그와 같은 기쁨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시청각장애인 직업재활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상황이다. 민간단체가 하나둘 씩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학습지원이나 문화체험 활동 위주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인적인 재활은 미흡한 상태다.

시청각장애인 복지가 잘 되어있는 미국의 경우, 가장 주력하는 것이 바로 직업재활이다. 1967년 제정된 헬렌켈러법은 물론 국립헬렌켈러센터와 민간단체인 라이트하우스 등을 통해 직업재활을 위한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하벤 길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자립한 시청각장애인들이 많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도 시청각장애인의 직업재활, 즉 자립을 목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주력하는 것이 당사자의 역량 강화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의 힘을 키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당사자들을 복지 수혜자로만 보지 않는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끝이 아니라, 역량이 강화된 당사자를 동료상담사라던지, 촉수화·점자 강사로 위촉하고 보수도 지급한다. 이러한 일들은 당사자들에게도 스스로를 '주도권을 갖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손창환 씨의 입사 소식에 다른 시청각장애인들도 우리에게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전에는 장애로 인해 직업을 갖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손 씨 사례로 인해 이제는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 거다. 덕분에 센터도 목표가 생겼다. 직업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시청각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주도해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청각장애인을 훈련하는 과정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여럿이 한데 모아 훈련이 가능한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일대일 소통만 가능하다 보니 통역사, 활동지원사, 근로지원인 등 필요한 인력이 많다. 심지어 통역사의 경우 제공되는 급여도 턱없이 적어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훈련을 통해 취직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근무환경 조성에 같은 어려움이 반복될 것이다. 센터가 대한민국의 모든 시청각장애인에게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도 도우면 좋겠지만 민간단체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시청각장애인의 유형에 따른 직종과 훈련체계가 구축된다면 얼마든지 손창환 씨 사례처럼 직업재활과 취업이 가능할 것이다. 선진국과 같이 국가가 법 제정, 예산 편성 등을 통해 체계를 만들고, 헬렌켈러센터와 같은 민간의 전문기관에 위탁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청각장애인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머물고 있다.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머무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장애유형에 따른 특화된 직종이 개발되고 서비스 체계가 구축된다면 시청각장애인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홀로서기에는 경제적 독립을 빼놓을 수 없다. 시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직업재활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에서도 법 제정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의 진정한 자립을 위한 체계를 구축해주기를 바란다. 시청각장애인에게 자선이 아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홍유미 센터장/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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