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네 곁에 있어!"

"우리가 네 곁에 있어!"

[ 현장칼럼 ]

안지성 목사
2022년 07월 22일(금) 00:10
안지성목사
어제 저녁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카페에 반가운 손님 세 사람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5~6년 전쯤 마을학교에 대한 청소년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다. 이제 성인이 되어 동네 병원의 간호조무사로 일한다는 그 친구는 화요일, 수요일 카페에서 일한다는 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보고 찾아왔단다. 두 번째 손님은 내 오랜 친구다. 대학 시절 같은 과 친구로, 지금까지 자주 만나고 서로의 안부를 돌보는 사이다. 이날 아침 기분이 꿀꿀하던 내가 '오늘 저녁에 뭐해? 별일 없으면 카페에 놀러와. 무리하지는 말고'라는 메시지를 넣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준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손님은 '오늘 같은 날은 좀 일찍 문을 닫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막 넘어가려던 찰나, 빗속을 뚫고 들어온 20대 초반 커플이다.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우리 카페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오던 카페잖아. 중학교 때 처음 오고 그 뒤로도 많이 왔고, 고3때는 여기서 내 자소서 다 썼잖아. 와, 여기 그대로 있네."

2014년 11월, 새로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 우리 교회가 동네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세운 비전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오고 싶은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이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설치한 장치는 매우 단순했다. 청소년들에게 모든 메뉴 1000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보드게임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장치 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티를 내지 않았다. 당연히 교회라는 티도 내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뭔가 가르치거나 말하려는 냄새를 풍기지 않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런 공간에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오고 싶지 않을 테니까.

또 하나 이 공간을 만들면서 주의한 것은 특정한 세대에 한정된 공간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청소년 정책의 일환으로 청소년 전용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보다는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아프리카 속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을이 사라진 대도시 서울에서 무기력하게 고립되어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여기 네 곁에 있어' 하고 응원하는 마을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202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청소년 사망자 중 절반(50.1%)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살은 2011년부터 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율이 50%를 넘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도 청소년 자살시도가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중앙의료원과 경희대병원·서울의료원 연구팀이 전국 400여개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6~2019년 4년간 자살시도로 응급실을 찾은 14~19세 청소년이 2배 이상 증가했다. 2016년부터 매년 35.6%씩 늘어난 결과다. (한 일간지 2022년 6년 23자 참조)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청소년들의 마음 건강에 비상 경고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도 해가 갈수록 우울, 불안, 공황장애, ADHD 등의 정신적, 정서적인 문제로 힘들어 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도대체 청소년들의 마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오늘도 청소년카페라고 명명하지 않은 청소년카페 '카페자리' 에는, 결제 카드를 건네주며 "저, 10대예요!"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고 보드게임도 하고 간다. 점점 사는 게 버거워지는 청소년들에게 이 카페를 통해서 우리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 '우리가 여기 네 곁에 있어.' 하는 응원이 전달되고 있을까? 대답 대신 주문한 음료와 스낵에 말 없는 말을 담는다.

"우리가 여기 당신 곁에 있어요."



안지성 목사/ 새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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