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주목하게 된 이유

청소년에 주목하게 된 이유

[ 현장칼럼 ]

안지성 목사
2022년 08월 26일(금) 00:10
안지성목사
지난달, 금천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강연을 하나 부탁받았다. '마을 100℃'라는 강연이었는데 특별한 주제보다는 사람 중심의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해달라는 거였다. 그동안의 목회 경력으로 수다를 떠는 것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영 마음이 무거웠다. 내 이야기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 교회 이야기인데 그게 좀 부끄럽고 무거웠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 문을 닫은 일이었다. 그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 내는 것은 언제나 좀 아프다.

내가 일하는 새터교회는 일찍부터 지역사회 선교에 열심인 교회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여민회라는 기독교 여성 단체에서,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가부장제라는 이중적인 착취 구조에 놓여 있던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보다 먼저 세워진 것이 당시 새터어린이방이라고 불리었던 탁아방이었다(1987년 3월). 여성 노동자들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맡길 곳이 없어 방 문을 잠가두고 일을 나갔다가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일도 생기던 시절이었다. 교회는 당시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새터공부방(지역아동센터)이 만들어졌고(1989년), 새터녹색가게(2002년), 열린가족상담센터(2004년)를 세우며 가난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지역사회선교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다가 새터교회가 어떤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의식적인 전환이라기보다는 상황에 의한 강제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다른 기관들도 다 어려웠고 운영이 힘들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정말 본격적으로 어린이집 운영이 힘들어졌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2012년). 뿐만 아니라 새터녹색가게(2007년), 열린가족상담센터도 문을 닫았고 마지막으로 새터어린이학교를 2014년 문 닫으면서 새터는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때 주목하게 된 것이 청소년이었다. 그동안 새터교회가 주력해 왔던 기관들은 지역사회에 많아졌고 지역사회가 어느 정도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청소년은 그렇지 않았다. 청소년 단체도 없었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도 없었다. 마침 그때쯤 새터에서 자란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잃어버린 5,6년의 세월을 뒤집어쓰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아이들은 끝도 없이 무기력해져 있었고, 우리는 다시 그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동네에 살고 있는 새터교회 식구들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모임 자리'를 만들었고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 새터어린이학교 지역아동센터 건물 한편에 청소년 북카페 '책읽는고양이'도 만들어 운영하고, 청소년 친구들과 도제식으로 논술, 글쓰기, 그림 수업도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터를 잡고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도 새로 짓게 되었다. 그리고 거칠게 우리가 새롭게 열게 될 청소년 공간의 그림을 그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오고 싶은 청소년 카페, 청소년들의 아프고 다친 마음을 들어주는 청소년 상담, 세상이 강요하는 잣대가 아니라 스스로의 고유한 기준을 찾아가는 청소년 대안교육, 이렇게 세 가지 일을 하는 청소년 공간이었다. 이 일은 '돌봄살림치유공간자리'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로 시작해서 '공간자리'라는 사단법인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자리학교'라는 서울시 교육청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 청소년 카페라 부르지 않는 청소년 카페 '카페자리', 청소년 상담을 비롯한 방과 후 대안교실, 마을 예술창작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작하기 전까지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던 '마을 100℃' 강연은 놀랍게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새터교회 이야기에 생각지도 못한 따듯한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다. 우리 교회가 청소년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지역사회의 필요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필요에 응답하는 교회가 된다는 건 꽤나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지성 목사/ 새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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