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가는 친구들의 학교

학교 안가는 친구들의 학교

[ 현장칼럼 ]

안지성 목사
2022년 09월 23일(금) 00:10
안지성목사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해마다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을 지정한다. 다양한 이유의 학교 부적응으로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 일반 학교와는 조금 다른 교육과정을 제공하여 학업 중단을 예방하자는 취지이다. 말하자면 학교생활이 어려워서 학교 안가는 친구들을 위한 학교인 셈이다.

2022년 현재 서울시 교육청 지정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은 44개이다. 한 학급당 10~15명을 정원으로 운영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생활 적응이 어려워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들을 위탁하여 교육하며, 출석과 성적 등은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그대로 인정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더 다정하고 자유로운 이 학교에 출석하기만 하면 원래 다니던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니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놓인 학생들에게는 참 좋은 소식인 셈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자리학교'라는 이름으로 대안교육위탁교육기관 중학교 과정 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를 주중에 청소년 공간으로 운영하면서 만났던 청소년 친구들 중에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눈길을 주고 돌봐주면 좋을 것 같은 친구들이 보였다. 가끔씩 프로그램 있을 때만 띄엄 띄엄 만나는 것 말고 매일 꾸준히 만나 조금 긴 시간을 같이 보내면 어떨까 싶은 친구들 말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여 풀이 죽어있던 친구들은 우리 공간에 놀러오는 것을 좋아했다.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잘 받지 못했던 '넌 참 괜찮은 아이야' 하는 눈길을 조금 길게, 조금 깊게 받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의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 '자리학교'가 문을 열었다.

막상 문을 열고 나니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학교를 떠나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에 오는 친구들은 우리가 방과 후에 만났던 친구들하고는 또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교실 뒤편에 송장처럼 누워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화장실에 들어가 몇 시간을 웅크리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누구누구랑 한 판 뜨기로 했다며 패싸움 고지를 하는 친구, 이유 없이 픽픽 쓰러져서 온 학교를 긴장시키던 친구, 몇 십 분을 혼자 목 놓아 우는 친구, 입만 열면 욕이나 패드립이 습관처럼 튀어나오던 친구, 안기는 걸 참 좋아하는데 몸에서 유난히 냄새가 많이 나던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한 명 한 명이 새롭고 커다란 세계요 우주였다.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게다가 처음 해보는 학교 행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록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다니는 조금 자유로운 학교지만, 그래도 하나의 학교이므로 처리해야 하는 행정이 만만치 않았는데 게다가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힘들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능력자 담임 선생님이 계셔서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보다 더 적응이 잘 안되었던 건 학부모나 학생들은 우리에게 '학교'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서로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었던 오해도 '민원'이 되어 돌아오곤 했고, 그동안 우리가 애정으로 풀어놓았던 규정들은 '무원칙적인 학교 운영'으로 비춰지기 십상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에 우리가 친구들에게 주고 싶었던 깊고 따스한 눈길은 갈 곳을 잃었고, 그 대신 아이들의 하교 시간과 휴일, 그리고 방학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넌 괜찮은 아이야' 하고 바라보면 어느새 꽃 피울 줄 알았던 아이들의 환한 존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지쳐갔다. 우리는 조용히 내부적인 목표를 수정했다. '아이들의 변화? 그런 건 꿈꾸지 말자. 그냥 1년만 데리고 있자. 그러다가 다시 원래 학교로 돌려보내면 되는 거야.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고 목표야.'

우리가 다시 꿈 꿀 수 있을까?



안지성 목사/ 새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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