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상처

영광의 상처

[ 현장칼럼 ]

이금복 국장
2022년 11월 25일(금) 00:10

이금복 국장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으면서 미소를 짓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배에 난 수술자국을 영광의 상처라 여기며 당시의 기억을 행복하게 떠올리는 이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969명 정도가 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사람들이 이제까지 총 969명이기 때문이다.

본부에서 상담팀 업무를 맡으며 나는 수많은 생존 시 신장 기증인을 만났다. 기증 희망 단계부터 상담을 진행하고, 사전 검사에 동행하며 수술을 연계한 후 사후관리까지….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에게서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큰 수술을 앞두고도 기쁨에 차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마주한 대다수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거나 고통이 서려있었다. 그런데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주겠다고 병원을 찾은 이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온화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병중에 고통 받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와 그럴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된 것에 감사함이 교차하는 미소.

몇 해 전에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신장에 이어 간을 기증하겠다며 미국에서 입국한 교포도 있었다. "살면서 누구나 아픔을 겪는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잠깐 겪는 이 아픔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경험입니까"라는 것이 그 분의 고백이었다. 그와 비슷한 고백을 한 이들이 지난 9월에는 함께 해파랑길을 걸었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그들과 동행하며 또 한 번 뜻밖의 고백에 감동하는 시간이었다. 6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장을 기증한 집사님은 기증을 결심하며 '믿는 형제 중 병으로 아파하는 이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싶다'라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 집사님의 신장을 이식받은 이는 오랜 기간 신장병을 앓으며 고통 중에 있던 한 목사님이었다. 수술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 이름도 모르던 관계에서 생명으로 엮인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는 두 사람의 고백에서 이 일을 해야만 하는, 그리고 이 일이 더 널리 퍼져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일, 그 중 하나가 장기기증이다. 남에게 신장 하나를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기뻐하며 수술대에 오르는 이유는 신장 하나가 빠져나간 빈자리가 행복으로 채워지고, 그 위에 남은 상처가 사랑으로 덮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의 신장이 옮겨간 곳에는 회복이 일어나고, 온기가 깃들 것이라는 확신도 있을 것이다.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시대 속에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난세에서 세상을 구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평범한 이웃들이다. 불길 속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화재 사실을 알린 청년, 물길이 범람하는 거리에서 배수구의 쓰레기를 건져 길을 내어준 시민, 응급상황 속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기증인들까지… .

오늘도 배에 난 영광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기증인의 모습을 따라 생명나눔을 약속하는 우리 사회의 작은 영웅들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



이금복 국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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