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길을 걷는 사람들

기적의 길을 걷는 사람들

[ 현장칼럼 ]

이금복 국장
2022년 12월 23일(금) 00:10

이금복 국장

질병의 확산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건, 사고들. 뉴스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생명을 잃은 이들을 마주할 때면 슬픔이 밀려온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장기이식을 대기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뇌사 장기기증인의 수는 매해 제자리걸음이고, 올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가운데 장기이식 대기자만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매일 약 7명의 장기부전 환자가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적은 일어나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을 밝힐 희망은 찾아온다. 그 따스한 기적의 길 선두에는 뇌사 장기기증인들과 그 가족들이 서 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 생명을 구한 기증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갑작스러운 사별이라는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한 가족들. 본부에서 활동하며 '도너패밀리'라 불리는 뇌사 장기기증인의 유가족들을 만날 때 마음이 가장 크게 요동친다. 예고치 않은 사고나 질병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끝에서 생명 나눔을 선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3년 본부에서 처음으로 도너패밀리 예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만난 한 가족의 이야기는 여전히 내 마음을 따뜻하게 울린다.

기증인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사역을 하던 한 젊은 목사님으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났다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 생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던 터라 가족들의 동의하에 목사님은 마지막 순간 생명을 나눴고, 그를 통해 6명의 환자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목사님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 이 땅에는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 2명이 남았다. 아이들은 고작 7살, 9살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사모님은 남자아이 둘을 혼자 키워내며 오랜 세월을 기도로 이겨냈다. 13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장성해 대학생이 되었고, 엄마의 곁을 듬직하게 지키는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한 세월은 사모님의 몸에 질병의 고통을 안겼다. 투병하는 기간 중에도 사모님은 본부의 행사에 참여했는데, 항상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내려앉아 있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계속해서 찾아오는지 원망할 수도 있는 환경인데, 사모님의 입에서는 항상 감사의 고백이 넘쳤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란 것에 대한 감사함, 투병 중에 치료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장기기증을 결정한 다른 가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남편의 생명을 통해 누군가 이 땅에서 건강히 살아가고 있을 것에 대한 감사함…

나였다면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 상황에도 감사하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며 사별의 아픔 속에서 장기기증이라는 이타적인 결정을 내린 가족들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다른 가족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병하는 환자들을 위해 장기기증을 결정한 이들. 누군가의 삶을 바꾼 기적의 길 가장 앞에서 걷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쩌면 사랑과 감사라는 작은 등불이 켜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 등불이 밝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는 나와 같은 평범한 이들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적을 선물하는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이금복 국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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