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공공성과 끼리끼리 문화

교회의 공공성과 끼리끼리 문화

[ 현장칼럼 ]

최훈창 목사
2023년 02월 03일(금) 10:19
이 시대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공성(publicness) 회복이다. 누가복음 8장 16절에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했다.

이처럼 교회의 공공성 회복은 한국교회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사회참여, 봉사활동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지역사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교회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공감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 '평화통일, 빈곤, 인권, 불평등, 기후변화,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책'들을 성서적으로 접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교회는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한국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서는 '외부적' 변화이기 보다 '내부적' 변화로부터 공공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성이라는 단어는 사적인 또는 '끼리끼리'의 반대말이다. 공적의미와 반대 되는 의미인 끼리끼리를 영어로는 '퍼로키얼(parochial)'로 표기한다. 편협(偏狹)하다는 뜻이다. 편협은 사전적 의미로 도량이나 생각하는 것이 좁고 한쪽에 치우침이다. 사회적으로는 지역 갈등, 도농 격차, 계층 갈등 등 수많은 끼리끼리 문화에서 파생된 문제점들은 나만의 이익이 우선되다 보니 개선하기가 어렵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 조차 끼리끼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어려울 때가 있다.

장애인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우리교회는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장애인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도 우리교회는 장애인만 다니는 교회로 인식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교회는 교회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교회로 더 많이 통용 된다.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그리스어가 코이노니아이다. 그 의미는 친교, 교제, 교통을 뜻한다.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 안에서 친교나 교제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끼리끼리 문화는 교회 안의 신학적인 의미인 코이노니아와는 반대되는 의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 예배 드림 중에 세대통합예배는 전 교인이 함께 드리는 예배이다. 이 예배는 끼리끼리 문화에 대비되는 예배 형태라고 생각되어 긍정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교회 예배에서도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이끼리, 학생끼리, 청년끼리, 장애인끼리, 이처럼 각 부서별로 예배를 따로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교육에 특화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 할 수도 있겠으나 같은 교회 안에서 조차 소통이 부족한 현상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노인, 장애인들과 같은 취약계층은 대중과의 소통 부재로 인한 소외감을 교회에서조차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해 보셨는지 궁금하다. 사회적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지역적 갈등을 조장하는 끼리끼리 문화를 교회 안에서부터 공공성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교회 이름은 30년 전에 중도 장애를 입으신 전도사님이 지으셨다. '함께하는교회'이다. 예수님과 장애인이 함께하는교회! 함께하는교회는 작게나마 공공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이웃과 함께하는 토요식사를 하고 있고(코로나 시기에는 쉬고 있음), 성탄헌금의 전액을 이웃에게 나누는 일도 실천하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다수인 공동체이지만 우리 끼리만이 아닌 이웃과 함께하는 코이노니아 공공성 실천을 하는 함께하는 교회이기를 원한다.

최훈창 목사/ 전주함께하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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