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위기의 시대, 한국교회의 역할

인구위기의 시대, 한국교회의 역할

[ 현장칼럼 ] 기독교인이 '안물안궁'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박민선 이사장
2023년 03월 17일(금) 20:46
안물-안궁. '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의 줄인 말로,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형편에 관심이 전혀 없는데 자꾸 쓸데없는 질문이나 말을 걸어올 때 이를 거부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은어다. 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등 어린 세대에서 장난치듯 쓰이던 말인데 이제는 웬만하면 다 아는, 꽤 많이들 사용하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더 나아가 어쩌면 이 표현이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인구와 복지 현실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조심스레 하게 된다.

필자는 현장에서 노인과 장애인, 여성을 섬기는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며 복지와 보건영역에서 인구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이다. 20년 가까이 지역 독거어르신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고 안부를 확인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 또한 여성 장애인을 24시간 보호하는 생활 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급속한 인구변화와 증가하는 1인 가구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책 연구와 학술 행사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또 관련 연구를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최근 들어 이웃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도, 또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특히 몇 년 전 예고도 없이 우리를 찾아온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모임과 접촉이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단절하는 경향은 더 커지고 있다.

영 억지스러운 주장은 아닌 것이 매년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측정하여 발표하는 삶의 질 지수(OECD Better Life Index)에서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변에 부탁하고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는가?'를 묻는 사회적 연결망 영역에서 우리나라는 측정 대상 41개 국가 중 38위로 전체 국가 중 네 번째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오랫동안 유교 문화와 대가족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며 동방예의지국의 자부심을 가져왔던 우리나라가 개인주의가 보편화되어 있고, 이웃과 가족과의 교류가 가장 단절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라는 통계 결과가 당황스러운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품앗이와 상부상조의 전통은 옛날 말이 된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변화와 사회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국가이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개인주의의 보편화, 세대 간-연령 간 갈등이 있다.

작년 행정안전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천만 명이며 이는 전체 가구의 40.3%를 넘는 비율이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혼자 살던 사람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사망한 이후 한동안 방치되다 발견되는 죽음인 고독사는 꾸준히 늘어 작년 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한 해 3378명에 이른다. 하루에 9.3명 꼴로 고독사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도움의 손길을 보낼 사람들은 적어지고 있다. 1365 자원봉사포털 통계에 의하면 최근 3년 사이 우리나라 자원봉사자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는 있지만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리리라 예상된다.

이쯤되면 크리스찬으로서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기독교의 시작과 본질이 '연결'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시작이 창조주와 그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과의 연결에서 출발하고 있고,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중요한 지상명령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회와 믿는 이들에게 있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실천은 가장 큰 목표이자 기쁨이자 존재의 이유임에도 우리 사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고립과 단절'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립을 추구하고 단절을 부추기는 사회 흐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근본적 욕구는 '연결되고픈 마음'이다. 이는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사실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독거어르신, 장애 여성, 노숙인, 가출청소년 누구나 가장 행복할 때는 자신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때이다. 나를 향해 따듯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고,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누군가가 있을 때,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있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내 삶은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이 험한 세상도 다시 한번 살아봄직한 곳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단절을 추구하고 부추기는 흐름을 끊고 서로를 사랑과 관심의 끈으로 잇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흐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역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고(故)김영길 한동대 총장께서 자주 말씀하신 것처럼 엔트로피가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의(천국의) 신트로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기도하며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소망한다.

박민선 이사장 / (사)한국한아름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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