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선교 현장에서의 소리

노숙인 선교 현장에서의 소리

[ 현장칼럼 ]

안승영 목사
2023년 03월 31일(금) 15:51
노숙인(露宿人)은 이슬을 맞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시대적인 상황과 해석에 따라 부랑인 또는 홈리스(homeless) 라고 불리기도 하다가 이제는 통일되어 '노숙인'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낙인과 더불어 폭넓은 주거복지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어 명칭의 새로운 개념과 정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노숙인과 친구가 되고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동고동락을 같이해 온 시절이 어언 20년을 훌쩍 넘겼다. 이런저런 소회가 없을 수 없고 특히나 목회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역적인 내용이 잘 스며들었는지 되돌아 볼 때이다. 특히나 한국교회가 쇠퇴 일로를 걷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선구자적인 사명으로 인정받던 자리에서 지탄과 멸시의 대상이 된 이 시점에 노숙인 선교와 교회의 대사회적 사명의 실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회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복음주의적 행태와 초대교회와 예수의 관심사였고 복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경계가 신자유주의의 병폐와 함께 고스란히 교회의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이 작금에 한국교회의 현실이지 않나 싶다. 부자는 큰 대문이 있는 호화저택에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반대로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주워 먹고자 했으나 개에게 쫓기는 상황으로 가난함과 더불어 소외와 멸시로 삶이 힘든 많은 이웃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종국에는 부자와 나사로 둘 다 죽게 되지만 나사로는 안식을, 부자는 고통 가운데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라고 형제들의 구원을 호소하게 된다.

우리는 터닝 포인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 속에 다시 한번 한국교회의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과 방향을 노숙인을 기준으로 삼아 되새기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하여, 안양노숙인쉼터 희망사랑방이 현재까지 실천해온 노숙인 선교에 대한 내용과 방향을 통해 노숙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설정과 한국교회의 관심, 그리고 회복의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복음과 돌봄의 양면적인 시대적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필요는 있지만 예전처럼 희생과 단순한 복음전도의 방법으로는 본질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음으로 총평되는 예수의 민중에 대한 인식과 접근을 다시 한번 재고 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지금 까지 이루어 왔던 위대한 선교 역사의 본질을 다시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음도 돌봄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욕구나 필요가 매우 다양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고차원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이 사회 속에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자연스럽게 녹아질 수 있도록 그 방향성과 효과성을 찾는 것이 우리 믿노라 하는 자들의 숙제라고 여겨진다.

안승영 목사 / 유쾌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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