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현장에서 주어진 '공감'

노숙 현장에서 주어진 '공감'

[ 현장칼럼 ]

안승영 목사
2023년 06월 02일(금) 10:01
노숙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요량으로 연초 벽두에 급하게 기획안을 만들었다. 몇 년 전부터 외국에서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서 노숙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지원을 호소했던 일들을 눈여겨보아 왔던 터라 마음에 그려진 바가 있어 영민한 실무선생들에게 기획안과 부스제작, 생존키트준비, 참여안내문, 홍보물 등을 만들 것을 요구하여 각각의 달란트대로 협동작업을 통해서 드디어 '노숙공감부스체험오픈식'을 하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이벤트성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회적 호소가 될 수 있도록 하자라는 취지를 살려 먼저는 각 실무자들과 주민들 그리고 사회적영향을 최대화할 수 있는 지역의 인사와 기업, 종교인, 시민단체 등으로 참여대상자를 잠정적으로 분류하여 소소하게 진행을 시작하였다. 첫날 오픈식에는 여타의 언론의 취재로 '노숙공감'의 시발점을 알리게 되었고 안전과 공간사용을 위하여 안양시자율방범대와 1동 자율방범대 그리고 안양지구대의 협력과 엔터식스, 안양역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 시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곧 관심으로 변하기도 하고 좁은 공간의 어둠과 추위는 노숙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하곤 한다. '하늘을 베개 삼아 누우라'는 시적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불편함이 체험 내내 생각을 움켜쥐고 괴롭힌다. 여러 번을 뒤척이며 내 몸을 확인하는 작업이 곧 노숙의 삶 속에서 생존이라는 몸부림임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나는 여기 있어요", "나는 살아 있어요" 체험부스에 쓰인 것처럼 '여기 사람 있어요' 볼멘소리로 피를 토하는 외침으로 들려 온다.

짧은 체험 시간 동안 갖게 되는 생각과 감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부정이 압도한다. 불안과 공포는 이미 부스에 들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덮쳐올 차량이며 사람들의 발길질 등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까 하는 우려의 마음을 담게 된다. 어쩌면 긴 시간 길거리에서 노출된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노숙상황이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재정악화, 실업, 가정불화, 직업능력부족, 사회적지지의 단절, 질병 등의 여러 상황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고작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누군들 처음부터 인식하며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렇게 내몰려진 상황들은 더 깊은 상처를 베어내며 불안과 공포에 시간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 참 동안 잘 견디나 했더니 역시나 추위는 발목으로부터 서서히 그 강도를 더 해 왔다. 노숙형제들이 잘 때 발이 가장 춥다고 했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지만 대책은 없다. 그저 이리저리 뒤척이며 혹 남겨진 온기를 찾아보려 애쓴다. 이 초저녁에 잠깐의 체험이 어찌 긴 밤을 그것도 매일을 견뎌야 하는 그것에 비할 수 있으랴. 그렇게 하늘 아래 홀로 서는 연습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진짜로 노숙에 삶을 살아간다라는 것은 깊은 외로움과 고독이 사람과 사회라는 울타리를 멀리하고 찾아온다.

어느 한순간 거리에 나설 때 온 세상이 마치 야경을 저속촬영하는 파노라마처럼 자신은 혼자인 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실패, 좌절의 끝에서 말이다. 예를 들면 실연의 깊은 상처나 큰 손실, 가족의 죽음, 불합격 등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회적 죽음의 전초를 내딛는 것과 같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생활은 동물적 배고픔에 마치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찾아가는 씁쓸한 생존의 서막을 열어간다. 문득문득 늘 그리운 이들이 밤 하늘에 언듯 비칠 때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 손사래를 쳐 보지만 가슴 한편이 서늘하게 뻥 뚫린 느낌은 또 다른 고독과 싸늘함으로 다가온다.

잠깐 몇 시간에 노숙체험이 무얼 많이 느낄 수 있으며 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쟁과 분열의 상처에 휩싸인 곪은 공동체의 환부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공감과 대처에 대한 깊은 인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노숙인은 우리 사회 행복의 척도입니다"는 주문처럼 되뇌는 문구이다. 사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노숙상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들 실패하며 누군들 더러우며 누군들 외면받고 손가락질받고 싶을까. 우리 사회와 교회가 한 마음으로 웃을 수 있도록 서로가 손을 잡고 힘이 되어 주는 그 참 평화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지금도 노숙의 현장에서 삶과 사투를 벌이는 뭇 형제와 자매들에게 한없는 응원과 동지로서의 애정을 표하며 갈음한다.

안승영 목사 / 유쾌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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