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픔이 깊은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아픔이 깊은 사랑이 될 수도 있다

[ 현장칼럼 ]

강호 목사
2023년 08월 11일(금) 08:45
2000년 3월 24일 오전 7시, 나의 세상이 일순간 정지되었다. 아무리 불러도 미동조차 없는 아들을 마주한 아침이었다. 당시 아들의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 너무나 건강했던 아들이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빠, 난 머리가 좋은가 봐. 10분에 영어 단어를 50개 외우고 제일 먼저 집에 왔다니까?" 의식을 잃기 전날까지도 아들은 학원에서 치른 단어 시험에 1등으로 통과했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감기 증상이 있는 듯 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고, 동생과 떡볶이를 맛있게 나눠 먹은 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아들 석민이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먼저 들은 이는 아내였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뱉은 후, 석민이가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간 석민이의 병명은 '다발성 뇌출혈'. 의료진은 석민이가 깨어날 가망성이 전혀 없는 '뇌사'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전해왔다. 3일간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흐르고, 나와 아내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장기기증'이었다.

밝고 천진했던 석민이의 생명은 장기이식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8명의 환자들에게 전해졌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아들이 떠난 3월이 되면 그리움에 사무친다. 남들은 다가올 봄날에, 만개할 꽃들에 열광하지만 나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들끓는다.

그러던 2013년, 조금은 특별한 가족들을 만났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이들이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있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생명존중 교육을 계기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본부로부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의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녀, 배우자, 부모, 형제 등을 잃은 이들의 모임에서 회장직을 맡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 마음 가운데 난 상처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한 명의 유가족에게라도 위로가 닿을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너패밀리' 모임의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유가족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들이 만나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다 보면 마음 한편에 크게 뚫려있던 상처에 따뜻한 위로가 연고처럼 내려앉는다. 어느 날은 내가 다른 가족들의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고, 또 어떤 날은 다른 이들이 내 마음에 연고를 발라준다. 그렇게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아픔을 함께 품어왔다.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아들 덕분에 만난 새로운 가족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사랑을 배운다. 도너패밀리 회장을 맡은 후, 처음에는 나의 헌신과 용기처럼 보였던 일이 이제는 나를 살리는 일이 되었다. 슬픔 가운데 있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로하고자 건넸던 따뜻한 말이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올 때, 진정한 사랑의 힘을 느낀다. 아들을 떠나보낸 후 얻은 수백 명의 유가족들과 함께 걷는 길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아들의 생명이 8명의 환자들에게 전해졌을 때, 아픔도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듯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만났을 때, 때로는 아픈 경험이 깊은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호 목사 / 도너패밀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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