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

[ 현장칼럼 ]

강호 목사
2023년 09월 08일(금) 13:18
지난달, 예기치 않았던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전복삼계죽, 프로폴리스, 유산균, 우양산 등이 든 택배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많은 기부자와 함께 마련한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극심한 무더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슬픔 속을 지나고 있을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하늘에 있는 아들 석민이가 "아버지 어머니, 유독 비가 잦고 무더운 여름철 건강히 잘 보내세요"라며 보낸 선물 같아 마음이 더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선물 사이로 작은 책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5월 본부에서 진행한 사진전 '장미 찬미'의 내용이 담긴 책자였다. 그중 건강을 회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장기이식인들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아들이 살아있다면 이 나이쯤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송범식 씨는 5년 전 서울대공원으로 떠난 나들이에서 처음 만났다. 본부가 기획한 봄 소풍으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 여럿이 함께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식인들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송범식 씨는 다부진 몸과 우렁찬 목소리가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들 석민이가 뇌사로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해인 2000년, 송범식 씨 역시 이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석민이가 기증한 달은 3월, 그가 이식을 받은 달은 6월이었다. 송범식 씨는 매일 아침 기증인을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하는데, 나를 알고 난 후로는 기도 때마다 석민이를 떠올린다고 했다.

석민이의 장기를 직접적으로 이식받은 것은 아니지만, 송범식 씨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강히 지내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까지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석민이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와 같이 건강히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또 한 사람, 눈에 띄는 한 청년이 있었다. 대학시절 유전적 요인으로 심장병에 걸린 27살의 김상훈 씨였다. 제대 후, 어느 날부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가까운 거리도 걸어가기 힘들었다는 그는 1년간 인공심장에 의지한 채 칠흑 같은 고통의 시간을 버텼다고 한다.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에 병원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는 그는 현재 심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취업에도 성공해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회초년생으로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에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 열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던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석민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도 저 청년처럼 가슴 뛰는 일상을 살아가기를….

질병의 고통을 지나 장기이식으로 건강한 일상을 회복한 이식인들의 모습은 나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장기기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기증인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장기기증'이라는 유산은 누군가의 삶 속에 따스한 자양분이 되어 생명의 꽃을 피워내기 마련이다. 이식인의 삶 속에 각양각색으로 피어난 그 꽃을 바라보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은 작은 위로를 얻는다. '우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구나.', '환자도 살리고, 하늘로 떠난 가족도 살리는 결정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을 가족의 온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기증인의 생명을 이어 살아가고 있는 이식인들이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를…, 또한 그들의 건강한 모습을 통해 생명나눔의 가치가 더 널리 퍼져가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강호 목사 / 도너패밀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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