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권리도 있다

아플 권리도 있다

[ 현장칼럼 ]

김광현 원장
2023년 09월 15일(금) 09:58
지난 팬데믹 기간은 요셉의집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가혹한 시기였다. 요셉의집 내에서만 생활해야 하고 면회, 외출이 일절 금지되었다. 보다 안전히 코로나 유행 시기를 넘긴다며 강제로 시설 내에서만 머물게 했다. 선택권은 없었고 정책 결정에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하며 전문가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했다. 물론 선한 의도였지만 강압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잠에서 깨고 잠들어야 하는 시간이에요', '하루에 커피는 두 잔만 식후 30분에 마시세요', '밥은 적당히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을 더해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건강해요',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만 주말에만 해요, 주문이 복잡하니 치킨 족발 피자를 돌아가면서 먹어요' 등 장애인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습관적 규칙이 생겼다. 분명 시작은 장애인의 건강한 일상을 위해서지만 어느 순간 무조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선택권은 없었고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일상을 당연시하였다. 왜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차별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한다는 사람은 없는 것이 되었다.

배제되었다. 결과를 단정 짓고 장애인을 위한다며 선택권을 빼앗았다. 늦잠을 자거나 밤샘을 해서 생체 리듬이 깨질 권리도, 하루 1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실 권리도 과식 또는 금식할 권리, 그리고 아플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은 일하는 직원의 지식과 경험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었다. 선한 의지만 갖고 있다면 당사자가 가지는 생각, 바람, 의지 등을 살펴보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켰다. '이럴 거다, 저럴 거다'라는 편견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였다.

선한 편견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안 되며 동등 당사자이며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권리를 누릴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장애인은 '불쌍하다' '도움이 필요하다' '잘 모를 거다'라는 나쁜 편견과 '착하다' '순수하다' '항상 웃는다'라는 선한 편견조차 없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행동이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배제, 편견, 차별하였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시작되었고 일상의 모든 것에 보편성이 전제되었다. 토론하고 공부하고 전문가의 교육과 상담을 받으며 장애인 또한 보편적인 다양성, 개별성이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보편성과 개별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평등한 존재,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전제가 되기 시작했다.

아픈 것은 그저 아픈 것뿐이다. 아픈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아픈 것도 권리이고 아파서 행복할 수 있다. 못 아프게 하는 차별은 필요 없다. 이런 차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고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차이가 없다. 장애인이 누릴 권리와 비장애인 누릴 권리는 동일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김광현 원장 / 요셉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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